"엄마, 어제 도서관 갔을 때 아빠가 벚꽃구경 가자했는데 엄마 없어서 못 갔어" "맞나? 그래서 오늘 가자고?" "몰라,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나와 딸이 나눈 대화를 신랑이 엿들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나눈 대화가 신호탄이 되어 저녁에 외식도 하고 꽃구경도 할 수 있었다.
영지설화공원 입구
불국사 아랫동네에 있는 '영지설화공원'에 갔다. 아사달 공원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영지저수지를 둘러싼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도 좋고, 계절마다 다양한 꽃도 피어나 눈도 즐겁게 해 준다.
신랑이 일찍 퇴근해서 불 없이도 걷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이라 그런지 서둘러 걷게 됐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잡다한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렸고 설치된 조명에 비친 벚꽃나무들은 한껏 여유로워 보였다.
경주시민이라도 이곳을 모르는 분이 많다. 조용하고 아늑해서 나만 알고 싶은 그런 곳이다.
한 바퀴 도는데 30여분 정도 소요되는 산책코스로 제격인 곳인데, 오늘은 낚시꾼도 애법 눈에 띄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들은 아쉬움에 시선이 낚시하는 분께로 만 향했다. 조만간 낚시하러 오자며 아쉬운 마음을 토닥거려 주었다.
생각보다 차갑지 않은 날씨가 고마웠고 걷는 내내 뛰다 걷기를 반복했다. 벚꽃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로 찍고 향기도 맡아보며 오감으로 진하게 느끼고 싶었다.
혼자 벚꽃에 취해있다 보니 나머지 가족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좀 기다려주지' 달리기도 못하는데 전력질주를 했다. 나의 모습을 본 딸은 나무로 된 다리가 부서진다며 나보다 다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장난인 줄 알지만 장난마저 야속했다.
여느 때보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하다. 나무다리를 넘길 것 같은 가득함과 찰랑거림이 무서움도 전달했다.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 어두운 밤하늘에 떠있는 별빛처럼, 벚꽃 잎은 초롱초롱 저마다의 색과 빛을 발산하는 것 같아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두운 가운데 선명하고 또렷함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도 모르게 벚꽃을 느끼고 있는데 두 아이는 재잘재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오랜만에 다정한 모습을 보여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참으로 흐뭇했다. 두 아이의 다정함이 날아갈세라 연신 카메라로 찍으며 담아냈다.
아버지와 비슷해진 중3아들이 아빠를 업어보겠다고 나섰다. 어느새 아빠만큼 커서 업어드리겠다고 하니 세월의 속도가 가늠이 안될 만큼 빠르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빠를 업는다. 아빠를 업고 뒤를 잡은 두 손은 힘이 가득 들어가 있다. 아빠를 놓칠세라 제 딴엔 용을 쓰는 게 눈에 보였다.
잠시 걷더니 이내 놓친다. 모든 것을 처음 느끼게 해 주고, 처음 경험하게 해 준 큰아이가 또 다른 처음을 선물했다. 이 순간을 놓치기 싫어 영상으로 담기도 했다. '격세지감' 아이가 벌써 이만큼 커버린 건가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 모습을 바라보는 지금은 행복함이 더 크다.
아빠업어준 아들
코로나 이후, 급격히 친해진 우리 가족은 함께함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딸아이는 간혹, "나는 참 행복한 아이인 것 같아"라는 이야기로 우리 부부에게 감동을 던져준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늘 그거 하나다. "너희가 행복하면 좋겠어" "너희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 "힘들어도 행복하고 싶다면 견뎌낼 수도 있어야 돼"
바로 행복이다.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걸으며,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면서 웃음이 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