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선물한 욕실

by 박현주

비가 언제 그리 쏟아졌나 싶을 만큼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푸르다.
반짝이는 햇볕 덕분인지 기분도 한층 업되고 마음도 한없이 넓어진다.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운동을 나갈까 고민하는데 습도의 무게가 심상치 않다.
숨도 막히는 것 같고 몸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듯하다.
건강하려고 하는 운동이 오히려 병을 줄 것만 같았다.
운동복을 다시 갈아입고 에어컨밑으로 가 바느질을 했다.
운동을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몰려와 마음 한 편이 무거웠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건너뛰었다.
가벼운 위장으로 러닝머신을 걷다 뛰었다.

우리 집 러닝머신은 집 밖 창고(4면 중 2면이 뚫린)에 있다.
다 내린 줄 알았던 빗소리를 들으며 걷고 뛰길 반복했다.
비를 맞으며 뛰고 싶다는 생각도 간간히 들었다. 새 운동화를 적실 수없으니 그 마음만큼은 꾹꾹 삼켜버렸다.
40분간 걷다 뛰길 반복하다가 마지막 1분은 전력질주를 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땀을 얼마나 흘렸던지 온몸이 비를 맞은 것처럼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오랜만에 '오. 운. 완'을 외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운동했다.
땀을 흠뻑 머금은 채 바로 샤워를 했다.

혹시 욕실에서 갑작스럽게 아이디어나 영감 같은 게 떠오른 적이 있는가?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는 샤워 중 깨달은 게 있었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도 목욕 중에 깨달은 바가 있다. 욕실에서 추리소설 아이디어를 떠올린 '아가사 크리스티'도 있다.

나에게도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씻다 보니 쓰고 싶은 그림책주제가 마구 솟구쳤다. 이런 날이 있다니!! 기쁜 마음도 잠시, 곧 난감해졌다.
욕실에는 필기구가 없었고 휴대폰마저 없었다.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되뇌어야만 했다.

씻고 나온 나는 떠오르는 대로 여지없이 적어 내려갔다.
어느 작가는 욕실에 메모도구를 챙겨둔다고 하던데 갑작스레 떠올린 아이디어를 잃을까 봐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메모장을 애법 채우고 나니 괜스레 흐뭇해진다. 무언가 큰일을 해낸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작가든 아니든 메모하는 습관이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던 순간이었다.

운동도 하고 아이디어도 얻은 값진 저녁시간이었다. 매일이 오늘 같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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