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의 최애간식

건빵

by 박현주

'건빵이네, 한 포대 사서 아빠 갖다 드려야겠다.'

딸 학교를 지나 집으로 오다 보면 큰 대로변에 대형트럭이 늘 서있다. 그곳은 건빵 파는 아저씨가 365일 주차를 해놓고 판매를 하시는데 오늘따라 유독 눈에 밟힌다.
아마 내일 아빠를 만나러 갈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빠의 최애간식이 눈에 더욱 꽂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필승!!"
집에 있어도 들려오는 인사소리. 목청이 터져라 인사하는 것을 보니 포대장아저씨가 출근을 하시나 보다.

그렇다. 나는 군인의 딸이었고, 관사에서 15년 정도 살았다.
다른 여자분들은 군대 이야기를 싫어한다는데 나는 조금 다르다.
군대가 돌아가는 일들을 대충 꿰고 있어서일까?
신랑과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군대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한다.
살아온 추억 때문일까? 예전 늠름했던 아빠생각이 나서일까? 재밌고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목청이 커진다.

나와 동생, 관사에 사는 아이들은 부대가 놀이터였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내무실로 향했다. 주말은 더 일찍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포의 향기, 워커의 가죽향기, 그때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명 할아버지 향기라고 불렀던 남정네의 향기까지 온갖 향기들이 내 콧속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반겼다.

아빠가 근무한 부대는 통제대라고 불렀고 집에서 차로 이동해야 했지만 관사에 붙은 부대는 본부라고 불렀다. 발사대라는 부대도 있어 3군데로 나뉘어 있었지만 우리의 주 무대는 본부였다.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본부와 관사가 있었으니 여간 가까운 게 아니었다. 넘어지면 코앞이라는 말이 딱 맞는 위치에 있었다.



내무실 안 침상사이 통로를 꽉 채운 나지막한 수족관이 있었다. 그 속에 있는 생물들을 만지작 거리는 게 1순위였다.

어릴 적 우리 키에 딱 맞는 높이의 수족관이었기에 손을 넣고 빼고 하기도 쉬웠다. 아쿠아리움에 가면 아이들 눈높이에 체험가능한 수족관이 있는 것처럼 딱 그 높이, 그 느낌이었다. 색색깔의 돌, 반짝이는 돌, 작은 게, 작은 물고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무반을 검열하듯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복도건너편에 있는 통신반에 들어갔다.

나에게 통신반은 학교 의무실같이 아늑한 곳이었다.

2명이 겨우 앉을만한 좁은 공간에 기계가 있었고 그곳을 제외한 공간은 넓고 편안했다.


통신반을 담당하는 삼촌은 냥이집사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 덕에 우유를 먹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자주 봤다. 아니 갈 때마다 봤다. 그 고양이에게 주려고 우유급식을 받으면 챙겨 온 날도 많았다.

고양이와 한참 놀며 삼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지만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던 참 따뜻했던 분이었다는 것만은 잊을 수가 없다.


배꼽시계가 울릴 때쯤 되면 서둘러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우리들의 최애장소이자 최고의 놀이터였다.

식당에 들어가면 특유의 향기가 났다. 짬밥의 향기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향기와 남정네의 향기와 주방세재의 향기가 섞여 오묘한 군내가 났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형솥과 함께 있는 삼촌들에게 가서 인사를 건네면 간식은 그냥 생겼다.

플라스틱 음료수병에 벼메뚜기를 잡아간 날은 새카맣게 튀겨 설탕범벅도 해주셨고 건빵은 무조건 이었다.


쌀이 보관된 창고에는 건빵도 함께 있었는데 오리새끼처럼 삼촌을 뒤따라 쫄래쫄래 창고로 가면 손에 한 봉지씩 건빵을 쥐어주셨다.

받은 건빵을 들고 쌀포대 위에 걸터앉아 나만의 방식으로 건빵을 먹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때도 있었다. 세상 걱정 없고 건빵하나로 행복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네이버나무위키-출처



처음엔 건빵 안에 건빵과 별사탕이 함께 있었다. 요즘 과자에 비교해 보자면 뽀빠이 과자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비닐봉지에 별사탕이 따로 담겨서 나왔다.
아빠가 제대할 무렵엔 건빵만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겐 최고의 간식이었다.


'간식으로 건빵을 배 터지게 먹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부대에서 튀겨주는 건빵튀김을 먹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금 돌이켜보니 모든 날, 모든 순간들이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무척이나 그립고 대단히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빠는 여전히 건빵을 좋아하신다. 지겨울 법도 한데 건빵트럭이 보이면 무조건 포대로 사신다. 말릴 수도 없다.

강건하고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의 당신을, 당신의 방식대로 곱씹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리고 싶지 않다.

일 때문에 인천에 가 계신 아빠가 일주일 동안 쉬시게 돼 친정집에 오셨다 하니 일도 제치고 찾아가 보려 한다. 맛있는 거 사드린다니 잡채밥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하신다. 못 말리는 아버지다.

아직까지도 건빵이 아버지의 최애 간식이지만 내일만큼은 맛있는 음식으로 미소와 행복을 안겨드리고 싶다.

"잡채밥 말고 제발 다른 거 잡수셔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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