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만나고 왔다. 지난 설에 뵙고 두 달 만이었다. 두어 달의 간극이 그리 컸던 건가? 아버지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당뇨가 시작된 것이다. 물이 많이 먹히고 화장실도 자주 가고, 많이 먹어도 살이 쭉쭉 빠져서 검사해 보니 당뇨였단다.
당뇨를 의심하게 하는 증상을 '삼다'라고 배웠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다음, 소변을 많이 보는 다뇨, 많이 먹게 되는 것을 다식이라고 해서 삼다라고 부른다 했다.
대상포진이 오셨을 때도 병을 키우셔서 크게 고생하셨는데 반쪽이 된 얼굴을 뵈니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많던 머리숱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머리밑도 휑하고 서리가 내린 것처럼 뽀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우리 아빠, 인자 진짜 할아버지 다됐네~" 웃으며 아빠의 흰머리를 만져보았다. 머리칼도 얇아져 더 건드렸다간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요즘은 일 년이 다른 것 같다. 우리 아빠는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늘 든든한 모습으로 평생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는데,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작아진 어깨는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어릴 적, 아빠등에 업히면 등이 너무 커서 두 손으로 잡기에도 힘들어 나무에 달린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아빠의 등이 초라해 보일 만큼 작아져있다.
아빠의 빛나던 청춘과 넓은 등을 빼앗아간 세월이 야속했다. 할 수만 있다면 되돌려드리고 싶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고 엄마와 셋이서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요 근래 '원가족'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많아 유독 마음이 쓰였는데 건강하시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병과 동거를 시작하게 된 아버지를 보니 없던 걱정이 솟아난다.
언젠간 마주해야 될 상황인데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건강에 염두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병원에서 마주했던 당뇨환자들, 특히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고, 살이 썩어 들어가는 환자들을 보았던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합병증이 무서운, 고약한 병이라고 겁을 잔뜩 드리고 돌아왔다.
아무리 엄마가 옆에서 이야기해도 엄마말에만 두꺼운 귀를 가지신 어른이라 내가 악역을 자처했다.
집으로 가려하니 발길이 유독 떨어지지 않는 날이다. 돌아갈 수도 없는데,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부모옆에 붙어있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건 가는 세월의 유속이 너무 거세서 느껴져서일까? 잠시라도 잡아두고 싶었다.
딸 셋을 여의면 기둥뿌리가 팬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 하는데 우리 엄마는 나를 그리 만든다. 내차는 왜건형이라 트렁크도 다른 차에 비해 크다. 그 큰 트렁크를 가득 채워주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신다.
헤어짐이 아쉬워 운전석 문을 열고 잡은 채로 서서 또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무리 세대가 좋아져 소통하기가 좋아졌다지만 얼굴을 보고, 표정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는 스마트기기에 견줄 수 없는 따뜻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추석까지는 못 볼 거라서 열심히 눈 안에 부모님의 얼굴을 담았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시는 두 분의 모습에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왜 이렇게 작아져계신 건지, 왠지 모를 측은함에 눈앞이 흐려진다.
수척해진얼굴, 백발설염이 된 우리 아버지, 늘 소녀 같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주름이 패인 우리 엄마, 두 분 다 건강하셔서 내 옆에 오래오래 함께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