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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처와 치유

아프니까 사랑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여동생이 있다.


에너지가 잘 통하는 우리는 걸어올 때의 리듬감만 보아도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동생은 카페에 앉자마자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평소 둘이 만나면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나는 패턴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이럴 때 다짜고짜 “무슨 일이야? 얘기 좀 해봐”라고 하면 상대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차분한 톤으로 “괜찮아?”라고 넌지시 물었고, 동생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휴지를 손에 쥐어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동생이 감정을 조금이나마 토해낼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한참 울고 나서야 동생은, “언니, 내가 만나는 사람 유부남이래.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됐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주었더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너무 큰 배신감에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조차 놀랐지만,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동생의 감정이 너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자신이 더욱 밉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남자를 끊어내지 못하는 본인의 태도가 바보 같다며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상태에서 그 사람과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 같니? 결국 더 큰 상처만 주고 떠날 게 뻔하다고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동생의 귀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이런 교과서적인 말로 몇몇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나마저도 너의 사랑은 잘못된 사랑이고, 단지 착각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해버리면, 내 동생은 기댈 곳마저 없어질 것 같아 더욱 조심스러웠다.


동생은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지금 자신의 사랑에 더 이상 확신이 없고, 끝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쉽게 정리가 안 된다며 답답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솔로 남인 줄로만 알고 진심을 다했던 동생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동생이 그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언니, 나 남자 친구 생겼어. 소개해줄게. 같이 밥 한 번 먹어.”라고 해서 만난 적이 있다. 부드러운 인상에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우선은 동생의 건강이 걱정됐다. 잠도 못 자고 못 먹었는지... 많이 수척해 있었고,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함께 죽을 먹고 마트에 들러서 간단하게 챙겨 먹을 수 있는 식료품을 사들고 동생의 집으로 갔다. 오늘은 언니가 옆에 있어줄 테니까 잠 좀 청하라고 하고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에 동생의 전화로 그 남자의 연락이 빗발쳤다. 나는 일부러 본 게 아니라 할 수 없이 동생의 전화를 확인하게 되었고, 이 참에 내일 잠시 만나서 얘기 좀 할 수 있냐고 요청했다. 그 남자는 바로 수락했다.

물론,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일이다. 감정적으로 연결된 관계라면, 더욱 그러하다. 제삼자가 중간에 끼어서 아무리 바른말을 한다 해도, 오해가 생기거나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니 입장에서 이 사실을 안 이상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날 그와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 역시 좋아 보이진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엄연히 유부남이면서 자신의 처지를 솔로로 탈바꿈한 것은 어찌 보면 개인의 욕심이자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부분을 따지려고 그를 보자고 한 게 아니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이다. 현 상태에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감정은 존중합니다. 다만, 처음부터 관계의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건, 누구보다 그쪽이 더 잘 알 거라 생각해요.


저와 동생은 친자매처럼 알고 지낸 지 1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동생이 이렇게 힘들어한 적은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감성적인 친구라서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일어서기 쉽지 않죠... 그쪽이 먼저 감정을 정리해 주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렇고요. 정중히 부탁합니다.”


말을 하는 나도 아팠다. 그렇지만, 한 번은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사자들은 현재 깊은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제3의 냉철한 시각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유부남도, 유부녀도, 그 누구도 ~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본인의 자유 아닌가?


다만, 초기에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느낀 그대로를 연애의 욕구로 발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내 말이 아팠다면 미안해요. 많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정의할 생각은 없어요. 정답은 없으니까요. 함께한 내내 진심이었다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본인들에게는 사랑이었을 테죠...


다행히도 아직은 신호등이 초록불로 켜져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각자의 방향으로 건너가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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