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의사 표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글쎄, 모르겠어, 다음에라는 말로 끝을 흐려, 물어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다.
어찌 보면 그러한 대답은, 거의 ‘아니’에 가까운 말일지도 모른다. 정말 마음이 움직인다면, 보통은 그 자리에서 응, 그래, 좋아 같은 대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면, 그건 또 다른 상황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내가, 타로카드를 한 장씩 넘기다 멈춰 집어든 카드는 2번 고위여사제(THE HIGH PRIESTESS)였다. 평소 확실한 의사 표현을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고위여사제는 어떠한 물음에도 “응”, “좋아”, “그래”가 아닌 그 중간 지점에 머무르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오늘따라 유독 이 카드에 끌린다.
메이저 아르카나 2번 고위 여사제
카드 속 그녀는 신성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준다. 겉모습은 차분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숭고한 기품과 신성한 아우라는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한다. 하지만, 사람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면은 자유롭지 못한 듯한 무거움 속에서 무엇인가를 지켜내야 하는 중압감을 떠안고 있다. 정말 몰라서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상황과 감춰야 할 현실에 놓인 듯, 어딘가 모르게 깊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 역시 속으로는 혼자서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고독한 존재다.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은은하게 틀어놓았다. 그녀의 차가운 고독의 온도가 내 마음에 더욱 깊이 전해진다. 가슴이 뭉클하다. 마치 그녀의 신비스러운 내면을 지켜나가는 무게와 비밀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카드에 집중하다 보면 그 카드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행복감을 느낄 때도, 옅은 미소를 지을 때도, 지금처럼 가슴이 저릿할 때도 있다.
문득, 그녀는 이러한 신성한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나면, 인간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떠날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에게 “나 퇴임한다”라고 선언할까? 아니면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떠날까? 왠지 나는 후자라는 생각이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사색에 잠겨본다. 훗날 내가 사람들에게 긍정에너지를 전할 힘을 모두 다 소진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떠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