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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by 용간

라시도에게


오늘은 할머니 이야기 좀 할게.


우리가 텍사스에 온 이유를 너희에게도 이야기했는데 기억할지 모르겠구나. 할머니랑 큰 아빠랑 가깝게 지내려고 온 거야. 큰 아빠랑 할머니가 자주 오시니까 아빠는 좋아. 같이 제일 오래 살았지만 떨어져 산 시간도 많아서 그런가 봐.


그런데 할머니가 오시면 아빠가 자주 목소리가 높이지? 신경질적이기도 하고. 아빠는 너희가 나중에 할머니를 기억할 때 아빠한테 혼나기만 하는, 재미없는, 같이 놀아본 기억이 없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빠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구나.


너희가 다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좀 아파.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셨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너희가 다 알아듣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실 때가 많아. 그러면 아빠는 또 살갑지 못하게,


아까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렇게 몰아세우곤 했어. 그렇게 목소리가 올라가고, 할머니는 또 할머니만의 뚱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본단다. 아빠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아들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는 거지.


아빠는 할머니도 여자고, 마음이 연약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아. 그건 너희 할머니가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강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 할머니는 우리 집의 어떤 위기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결정을 하셨어. 아빠는 그게 할머니의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할머니는 그런 역할에 떨어뜨려진 것였던거야.


9살 때 아버지를 여읜 할머니는 시장 나가서 돈을 벌기 시작한 당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세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한 거야. 원래 놀기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궁금한 것이 많은 명석한 여자아이에게는 꽤 무거운 짐이었겠지. 그렇게 엄마는 집을 이끄는 리더이자 전사가 되었어.


아들은 크고 나서야 엄마도 사실 여자라는 걸 깨닫고 반성을 했지. 그녀도 사랑의 속삭임을 듣고 싶었을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딱히 그런 말솜씨가 있었던 것도 아니잖니? 아들 둘 중 하나는 멀리 떨어져 살았고, 아빠는… 뭐 말도 잘 안 듣고 화도 많이 내니.


이렇게 마음이 쓰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말이 예쁘지 않은 아들이지.


아빠가 앞으로도 할머니에게 잘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아프다는 걸 느낄 때마다 아빠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나 봐. 그러다 또 할머니한테 목소리가 높아져. 그리고 다시 마음이 아파. 조바심이 난단다.


기도해 줄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동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길. 할머니가 표현은 못 하고 재미도 없지만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희가 알 수 있게.


아빠를 위해서도 기도해 줘. 마지막 날에 아빠는 많이 울 거거든. 그래도 아빠에게 위로가 임하도록.


너희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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