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어진 Apr 02. 2024

다섯 번째 계절, 4월

조금 급해져도 될까? 쑥스러움을 참고 너를 만나도 될까?

 4월. 또 4월이다. 몇 번은 겪은 4월이다.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한다. 지겨워질 때가 된 것 같은데.


 꽃들의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철쭉으로 이어지는 색색깔의 이어달리기. 보고 싶지 않아도 창곡천 산책길에 잔뜩 피어서 안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어차피 다 시들어버리고 말 텐데. 


 4월은 잘하고 싶게 한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게 한다. 나답지 않게 한다. 사진을 찍게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게 한다. 빨리 나가서 불편하고 간지러운 너를 만나야 한다고 등을 떠민다. 지금 쓰고 있는 이 4월에 대한 글도 한 편의 시처럼 멋들어지게 써야 할 것 같게 만든다.


 4월은 조마조마하게 한다. 팔달산 벚꽃길을 떠올린다. 이번 주에 가야 만개한 걸 볼 수 있을 텐데. 석촌호수의 동호와 서호를 떠올린다. 새벽에 가야 사람이 없을 텐데. 불국사의 왕벚꽃을 떠올린다. 다음 주면 다 져버리고 말 텐데. 4월은 나를 급해지게 만든다.


 힘주고 싶지 않다. 급하고 싶지 않다. 4월에 등 떠밀려 나를 잃고 싶지 않다. 사진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만 찍고 싶고 옷은 후드티가 좋다. 불편하고 간지러운 너와는 적절한 때에 만나 적절한 속도로 가까워지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긴 하지만 담백하게 쓰고 싶다. 팔달산 벚꽃길도, 새벽의 석촌호수도, 불국사 왕벚꽃도 지금 내겐 무리다.




 한때는 4월이 특별했다. 4월은 봄이 아니었다. 다섯 번째 계절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4월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날과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고, 평생 4월에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로 가면 1년 내내 4월인지 진지하게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에 부자가 되면 지중해에 가서 살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제는 4월이 특별하지 않다. 혹시라도 까먹을까 한 번 더 되뇐다. 너무 특별해서 오히려 그렇게 한다. 애써 퉁명스럽게 대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유달리 짓궂게 하는 본성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가 보다.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면 한숨을 한 번 쉬고 고개를 턴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 황급히. 애써 무신경한 척한다. 나름의 고군분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4월이 되자마자 이 글을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4월은 또 하나의 계절이 맞다. 특유의 바람과 향기와 온도, 습도.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평생 이런 날씨에만 살고 싶다. 지중해는 가본 적도 없지만 여전히 그립다. 4월이 가버릴까 마음이 복닥복닥하다. 꽃이 져버릴까 조급해진다. 늘 오는 게 아니니까. 늘 피는 게 아니니까. 이제 가면 또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할 테니까.  


 다섯 번째 계절이 왔다. 조금 급해져도 될까? 쑥스러움을 참고 너를 만나도 될까? 예쁜 옷을 입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자고 해도 될까?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석촌호수를 가보자고 해도 될까? 힘주고 싶지 않은데. 급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될까?

작가의 이전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