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그런 큰 나무. 큰 사람.
꽃은 아름답다.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홀린 듯 카메라를 꺼낸다. 화려한 향기도 난다. 무엇으로도 흉내 내기 힘든, 꽃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다. 누구나 그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맡고자 코를 가져다 댄다. 하지만 한 번이다. 한 번 피고, 한 번 아름답고, 한 번 화려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러고는 끝이다. 남은 건 시드는 일뿐이다. 아름답던 꽃잎에 거뭇거뭇한 때가 탄다. 때는 점점 번지고 커져서 전체를 새카맣게 태운다. 바스락하고 죽음을 보여준다. 한 번이고, 한 철이다.
나무가 좋다. 나무는 한 번이 아니다. 한 철도 아니다. 늘 같은 모습이다. 늘 같은 자리에 우직이 서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이따금 모든 걸 비워버리기도 하지만,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죽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어디를 다녀와도, 잠시 한 눈을 팔아도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있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무 같은 사이가 좋다. 잠시 어디를 다녀와도, 한 눈을 팔아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관계가 좋다. 겨울을 견디며 조금씩 헤지고 낡게 되더라도, 그래서 조금 흔들리더라도. 꿋꿋한 사이가 좋다. 그런 관계는 나를 안심시킨다. 마음을 편하게 한다. 내일이 와도 우리는 변함없으리라 믿을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꽃 같은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향기로워도 그렇다. 겉치레가 화려할수록 오히려 경계심이 커진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어버리는 그 나약함이 버겁기 때문이다. 활짝 핀 꽃을 봐도 '어제는 봉오리를 맺었고, 오늘은 꽃을 피우니 이제 시들 일만 남았구나.' 생각이 든다. 언제 그날이 올지 몰라 불안하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비바람에 세차게 흔들리고, 태풍을 맞아 가지가 꺾이더라도. 뿌리가 단단히 박혀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 철 화려한 사람이 아닌, 내일도 그 자리에 서 있으리라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꽃이 필 수 있게 살갗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들이 안락한 둥지를 만들 수 있게 가지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여름 쉬어갈 수 있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몫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그런 큰 나무. 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