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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진 Oct 27. 2024

할매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세요.

(10)

할매가 입원 생활을 시작하자 엄마는 다시 짐을 쌌다. 원래 살던 H 대학병원 앞 원룸으로 돌아간 것이다. 현수는 둘 사이도 예전처럼 돌아갈까 걱정했지만 예상외로 그러지 않았다. 엄마아빠는 전보다 연락을 자주 했다. 할매 병간호를 교대로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메세지만 주고 받던 둘은 불편했는지 어느 새 전화를 주고는 사이가 되었다.


"여보세요."

"현수아빠 난데, 어머니가 집에서 양말 좀 더 갖다 달라고 하셔서. 집에 좀 들린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다. 

현수는 레고를 조립하는 척 하며 아빠의 전화를 엿들었다.

"어. 희영아 고맙다."

아빠는 어느샌가부터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야. 너. 그사람이 아니라 희영아. 라고 했다.

엄마는 눈치 챘을까, 못 챘을까?

"참나.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제대로 해."

"....그래. 고마워."

"나중에 하라니까?"

"..."

"이따 봐. 끊는다."

전화는 갑작스레 끊겼지만 예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현수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현수야, 오늘 엄마 집에 오시겠다."

현수는 다 들었지만 엿들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깜짝 놀란척 되물었다.

"응? 몇 시에?"

"글쎄. 그건 안 물어봤네."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돼?"

"너희 엄마 재촉하는 거 싫어하잖아. 때 되면 올 거야. 기다려보자."

"힝. 알겠어요!"

현수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빠가 엄마를 배려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



초겨울, 입김이 동그란 뭉게구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수는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떡볶이 코트 끝을 여몄다. 오늘도 방과 후에는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빨리빨리병 아빠가 재촉을 할 것이기에 현수는 걸음을 서둘렀다. 바람 끝에 예리한 날이라도 서있는듯 찬 바람이 현수의 빰을 에리게 했다.


할매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다. 원래도 말수가 적은 할매였지만 이제 하루에 열 마디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기침도 더 많이 했다. 하루 종일 할매의 기침 소리가 병실을 슬프게 울렸다. 그런 할매 생각에 아빠는 이따금 밤에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도. 


한 번은 아빠와 현수가 병실에 들어갔는데 할매는 없고 엄마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던 날이 있었다. 할매가 CT를 찍으러 내려간 사이에 마침 현수와 아빠가 도착한 것이었다. 엄마는 보호자용 탁상에 엎드려 있었다. 

엄마가 또 졸고있나? 

생각하는 찰나 아빠가 엄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희영아. 우리 왔어. 빨리 집에 가서 쉬어."

"..."

엄마는 고개를 들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기만 했다. 엄마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서둘러 고개를 들고 양손으로 얼굴에 남은 눈물을 훔쳤다. 엄마의 눈과 코는 루돌프의 코처럼 새빨갰다.

"어어.. 왔어?"

"엄마 울어?"

현수는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자신도 슬퍼졌다. 으엥. 하고 울고 싶어졌다.


"어 아니야. 괜찮아 현수야."

엄마는 울먹이는 현수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러자 아빠가 물었다.

"힘들지?"

"아니야. 당신이 매일 빨리 와줘서 뭐. 어머니가 제일 힘드시겠지."

아빠는 대답없이 엄마의 등을 토닥였다. 현수는 엄마아빠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처음으로 엄마가 아빠의 재촉하는 성격을 칭찬한 순간이라는 것까진 눈치채지 못했다. 



...



첫눈이 내렸다.


현수와 우영은 여전히 축구할 때만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 오늘은 그마저도 못했다. 눈이 와서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아쉬웠다. 우영과 그렇게 조금씩 대화를 나누다보면 언젠가는 예전의 사이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못했으니까.


5교시는 사회 시간이었다. 현수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잠깐 바라보다 다시 선생님이 켜놓은 티비를 바라보았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시간이었다. 축구할 때는 시간이 첨벙첨벙 가는데 왜 사회시간은 느리게 갈까를 고민하던 사이,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르릉


선생님만 쓰시는 교실 전화기 소리였다. 수업 시간에 전화가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현수는 교실에 전화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사회책을 교탁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갸우뚱 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3학년 2반입니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침묵. 선생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무슨 일일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은 선생님은 갑자기 현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현수야 잠깐 복도로 나올래?"

"네? 저요?"

현수는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져옴을 느꼈다. 우리반 모든 친구들이 고개를 일제히 돌려 현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정하율도, 정우영도. 현수는 덜커덩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다는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현수야.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대. 아버님께 전화가 왔어."

"네?"

현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잘 대화했는데. 이렇게 빨리. 할매. 할매. 


현수는 마음 속으로 할매만 되뇌었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아버님께서 택시 불러주신다고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시거든? 우선 교실 들어가서 가방 챙겨서 나오자." 

"네...네."

현수는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이상한 삐-소리만 귀에 웅웅 댔다. 심장도 이상하게 너울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현수는 눈 앞에 할매 얼굴이 그려졌다. 그제서야 눈물이 핑 돌았다. 


"현수야, 괜찮아?"

선생님의 그 말이 신호였다. 현수는 갑자기 목이 메이고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쏟아졌다.

"어..엉...어.....으엉엉엉"

현수는 복도에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든 말든 신경쓸 틈도 없이 통곡했다. 

할매가 돌아가셨다니. 할매가. 우리 할매가.

"흐억. 어어엉. 흐억. 끅."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현수의 울음소리에 몇몇 아이들이 교실 창문으로 복도를 내다보았다. 그 중에는 우영도 있었다. 우영은 현수가 펑펑 울어대는 모습을 보고 찔끔 눈물이 고였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선생님이 눈짓으로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복도로 나올 수 없었다.



..



3일 동안 현수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보았다. 처음보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먼 친척들까지. 현수에게는 정신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눈과 코는 3일 동안 원래의 색을 되찾지 못했다. 현수는 울 때마다 넘쳐 흐르는 콧물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이번에야 알았다. 엄마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양의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아빠는 원래 10분이면 밥을 먹어버리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랫동안 먹었다. 숟가락, 숟가락씩, 꾸역꾸역, 먹었다.


사람이 뜸해지는 저녁 시간이 되자 엄마는 장례식장 한 켠에 있는 작은 쪽방으로 현수를 밀어넣었다. 

"현수야, 방에 들어가서 양치하고 먼저 자."

"엄마는?"

"엄마는 밖에서 정리 좀 하다 들어갈게. 자고 있어."

"아빠는?"

"아빠는 여기 바깥에서 삼촌들이랑 잘 거야."

"알겠어어."


현수는 뜬 눈으로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한참 동안이나 들어오지 않았다. 현수는 감겨져오는 눈꺼풀을 밀어내다, 밀어내다 결국 잠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떠졌다.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만 있을 뿐, 온 사방이 캄캄했다. 옆을 만져보니 엄마는 아직이었다. 

아직도 안 들어왔네? 

현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더듬더듬 손으로 문고리를 찾아 방문을 열었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 있었던 탓에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백열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눈 앞이 거뭇거뭇하며 시려왔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밝은 빛에 시각을 적응시키자 엄마 아빠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할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모습은 꼭 우애좋은 남매같았다. 엄마아빠는 둘 다 눈이 빨갰다. 코도 빨갰다. 

울고있나? 싶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는 게 아니었다. 엄마아빠는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당신이랑 나랑 만나게 하려고 그때 일부러 당신한테 꾀병 부리라고 하셨잖아."

"야야, 말도 마라. 엄마가 그때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다 진짜."

"큭큭. 어머니도 가끔 완고하실 때가 있었지?"

"황소야 황소. 어떨땐 아빠보다 더 심했다니까."

"에구, 우리 어머니. 지난 번에 나한테 당신 욕도 하셨어."

"뭐? 엄마가? 뭐라고?"


울면서 웃을 수 있구나. 

현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엄마아빠를 불렀다.

"엄마. 아빠."

"어 우리 현수 깼어?"

"에고 우리 현수 이리 와."

현수는 엄마 아빠의 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둘 중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따스한 체온으로 현수의 마음을 덥혀주었다. 현수는 엄마 아빠의 품에서 할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할매는 웃고 있었다. "낑깡아 나와서 밥 먹어라."할 때의 표정이었다. 


할매 하늘 나라에서 행복하세요. 

현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



현수는 오랜만에 등굣길을 나섰다. 지독한 추위는 이제 더 추워질건데? 라고 말하며 현수를 약올리는 듯 했다. 현수는 코가 시려옴을 느끼며 목도리에 코를 묻었다. 그렇게 하면 코가 그나마 덜 시려웠다. 대신 인중에 물기가 맺히는 단점이 있었지만. 


현수는 아직 할매가 살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로 여행을 간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아직 병원에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느꼈다. 몇 개월동안 누워있던 그자리 그대로에 계실 것 같았다. 현수는 그렇게 상실의 감각을 찬찬히 실감해가는 중이었다.


"강현수!"

그때 뒤에서 누군가 현수를 불렀다. 현수는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우영이었다. 현수가 고개를 돌리자 우영이 709동 앞에서부터 뛰어오고 있었다. 현수와 똑같이 목도리 속에 코와 입을 파묻은 채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선. 


뛰어오는 우영을 보자 현수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나 부른 것 맞나? 혹시 잘못 들은 거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우영이 정확히 현수의 눈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강현수! 학교 같이 가자!"


"어...응. 좋아!"

현수는 가만히 서서 우영이 뛰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찬 바람도 물리치며 뛰어오는 우영의 가르마가 그날따라 하얗게 보였다. 못생긴 정우영은 오늘따라 하나도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현수와 우영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싱거운 이야기를 하며 학교로 향했다. 둘 사이에 "미안해"나 "용서해줘"와 같은 화해의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런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둘은 서로의 마음 감기를 이해해주는 것이었다.



...



봄이 왔다.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의 물결과 그걸 질투하듯 분홍케 물들은 벚꽃 나무가 서로 다투며 자신의 존재를 뽐냈다. 거리에는 온통 봄꽃놀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봄비가 벚꽃 잎을 싹 쓸어버리고 길거리에 '벛꽃잎길' 만들어 내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원룸에 살고 아빠에게 가장 예민하다. 아빠는 오늘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현수와 엄마를 재촉한다. 둘은 어제도 싸웠고, 오늘도 싸웠으며, 아마 내일도 싸울 것이다. 


"아니, 오랜만에 동물원 나들이인데 이럴거야 진짜?"

"그러게 오늘 말고 내일 가자니까! 주말이라 사람 많다고 빨리 출발하자고 했잖아!"

"주말이니까 느긋하게 준비하고 싶었다고!"

"하. 말을 말자 정말."


현수는 지겹게 싸우는 엄마와 아빠를 한 번씩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봄비가 내린 직후라 하늘이 맑게 개었다. 그때 따뜻한 봄바람이 현수의 코끝에 벚꽃 향기를 몰고 왔다. 현수는 킁! 하고 벚꽃 내음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할매. 보고 싶어요."


벚꽃 잎이 춤을 추듯 떨어지는 4월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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