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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Jun 09. 2024

제가 결석해도 잘 돌아가는데요?

때론 상쾌한 - 노란쌤의 '주인의식 배워가기' 수업 

    

“제가 결석해도 저희 반은 잘 돌아가는데 제가 무슨 주인이에요? 

       제가 주인이면, 

제가 없을 때, 친구들이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학생의 말이 분명 모순을 담고 있는데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얼떨결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네가 반에서 맡고 있는  ‘1인 1역 ’이 뭐야?”

“책꽂이 정리요.”

“네가 결석하면 정리가 잘 될까?”

“친구들이 저 없이도 정리 잘해요.”
 

다시 머리가 멍해졌다.

 ‘굳이 필요 없는 역할까지 ‘1인 1역’으로 쪼개서 학급 경영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까지 더하니 

        머리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     


“네가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 책꽂이가 잘 정리되는 건 아닐까?”    

 

그는 여전히 내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본다. 

 나는 꽁꽁 얼어간다.      


학생 없이도 교실은 잘 돌아간다?

 교장 없이도 학교는 잘 돌아간다? 

    사장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스토리인가?

최상의 상태이지 않나?

     완벽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상이지 않나?   

   

그런데 이 상황, 사장, 교장, 학생은 자기 존재의 무가치함을 느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시스템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 시스템에 누가 영향을 미쳤는가? 누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그 시스템이 안정될 수 있도록 누가 기여하였는가?

그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영향을 준 이가 바로 주인이지 않을까? 


나는 그의 교실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왜? 그 학급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에게 지적 동요를 일으켜 그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게 된다면 

그 교실에는 분명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가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학교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선시되어야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라야 주인이 될 수 있다.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누군가가 나를 주인으로 대우해야,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주인인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의식을 갖고 나의 영향력을  스스로 이해할 때라야 주인이 될 수 있다.      


'제가 없어도 우리 교실은 잘 돌아가는데 제가 무슨 주인이에요.'라는 말을

 ‘제가 없어도 우리 교실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 반에 주인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해야 

모순이 없지 않을까? 

또 다른 주인들이 있기에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주인 역할을 잘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주인은 대장이 아니다. 

주인은 한 명이 아니다. 

주인은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될 수 있고, 

  한 명의 주인이 없을 시, 다른 주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내 학급에 일어나는 일들에 촉각을 세우고 관찰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찾고, 더 나은 방향, 더 공정한 방향,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내가 할 수 있고,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의 영향력을 깨달으며 몸을 움직이는 자가 바로 ‘우리 반의 주인’인 것이다.  

    

    주인의식이란 그 누군가가 내게 부여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에게 부여할 때만이 가질 수 있다는 

         지혜를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feat.  정석 작가님 꽃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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