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상쾌한 - 노란쌤의 '주인의식 배워가기' 수업
“제가 결석해도 저희 반은 잘 돌아가는데 제가 무슨 주인이에요?
제가 주인이면,
제가 없을 때, 친구들이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학생의 말이 분명 모순을 담고 있는데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얼떨결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네가 반에서 맡고 있는 ‘1인 1역 ’이 뭐야?”
“책꽂이 정리요.”
“네가 결석하면 정리가 잘 될까?”
“친구들이 저 없이도 정리 잘해요.”
다시 머리가 멍해졌다.
‘굳이 필요 없는 역할까지 ‘1인 1역’으로 쪼개서 학급 경영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까지 더하니
머리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
“네가 맡은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 책꽂이가 잘 정리되는 건 아닐까?”
그는 여전히 내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본다.
나는 꽁꽁 얼어간다.
학생 없이도 교실은 잘 돌아간다?
교장 없이도 학교는 잘 돌아간다?
사장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스토리인가?
최상의 상태이지 않나?
완벽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상이지 않나?
그런데 이 상황, 사장, 교장, 학생은 자기 존재의 무가치함을 느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시스템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 시스템에 누가 영향을 미쳤는가? 누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그 시스템이 안정될 수 있도록 누가 기여하였는가?
그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영향을 준 이가 바로 주인이지 않을까?
나는 그의 교실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왜? 그 학급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에게 지적 동요를 일으켜 그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게 된다면
그 교실에는 분명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가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학교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선시되어야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 누군가가 나를 주인으로 대우해야,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주인인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의식을 갖고 나의 영향력을 스스로 이해할 때라야 주인이 될 수 있다.
'제가 없어도 우리 교실은 잘 돌아가는데 제가 무슨 주인이에요.'라는 말을
‘제가 없어도 우리 교실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니, 우리 반에 주인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해야
모순이 없지 않을까?
또 다른 주인들이 있기에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주인 역할을 잘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주인은 대장이 아니다.
내 학급에 일어나는 일들에 촉각을 세우고 관찰하여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찾고, 더 나은 방향, 더 공정한 방향,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내가 할 수 있고,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의 영향력을 깨달으며 몸을 움직이는 자가 바로 ‘우리 반의 주인’인 것이다.
feat. 정석 작가님 꽃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