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살까?

문구 여행자의 동행인 구하기

by 문지

한평생을 문구점 여행자로 살아온 나는 종종 나무람을 받았다. 나의 잦은 마실을 문구 투어라고 이름 붙이지도 않았다. 그냥, 정신을 차려 보면 문구점이었다. 흡족한 쇼핑 후에 나는 엄마나 언니에게 전화로 꼭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환장할만한 곳에 다녀왔어.’ 그러면 더 들을 것도 없이 ‘뭐, 문구점?’ 혹은 ‘너 또 문구점 갔지?’ 하며 바로 들켰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삿포로 여행을 떠났다. 역시나 가슴이 시키는 대로 예쁜 무언가만 있으면 들어가서 살펴봤다. 펜텔, 미도리 등 이미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의 제품 중 국내에 유통되지 않아 낯선 제품들이 잔뜩 있어 눈이 막 돌아갔다. 엄마는 노트를 또 사냐고 반쯤은 한탄하시며, 전체적으로 가볍게 구경하고 계셨다. 내가 이 둘 중 뭐 살까, 고민하면 대강 골라 주시거나 ‘니가 알아서 해.’하시면서.


매대에 초등학교 저학년용 얇은 공책이 있었다. 엄마는 국민학교 때 쓰던 거라며 반가워하시고는 유심히 들여다보셨다. 영어, 한자 쓰기 공책을 펼쳐 보시며 엄마는 내가 모르는 어떤 장면들을 떠올리고 계셨다. 한참을 들여다보시고는,


“이거 살까?”

하셨다. 엄마가 문구를 갖고 싶어 하시다니. 나는 왠지 엄마가 꼭 그 노트를 가졌으면 했다. 평소처럼 “에이,” 하며 내려놓으려고 하시기에,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노트 찾냐고, 있을 때 사야 한다며 설득했다. 내가 사줄까,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며 눈은 공책에서 떼지 않으셨다.


“옛날 생각 나네. 추억이다.”

결국 엄마는 공책 두 권을 사셨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의기양양하게 “그렇다니까. 문구의 매력을 좀 알겠어?” 했고, 그때부터 엄마도 조금은 적극적인 문구 여행 동행인이 되었다.


조금 탐나는 제품이 있으면 굳이 들고 와서,

“이것 봐. 필통인데 열면 스탠드로 바뀐대. 책상 자리 차지도 안 하고 대박이지?”

하면 엄마도 조금 더 유심히 보시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탐나지 않아?” 하면 엄마는 “그러게, 좀 좋아 보인다.”하셨다. 단 가격이 비싸면 더는 관심 주지 않으셨다.


그 여행이 끝날 때까지, 문구 천국의 나라에서 엄마는 나보다는 소극적이지만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같이 구경을 다녔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즐거워서, “엄마 이제 큰일 났다. 문구가 얼마나 종류가 많고 돈 쓸 일 많은데. 엄마도 개미지옥에 들어온 거야.” 하니,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라며 웃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막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이제 내가 다이소에서 스티커를 사 와서 자랑해도 관심 없이 눈 돌리지 않으시고 한 번은 더 봐주신다. “어머, 귀여워.”하시면 나는 신나서 “이거 줄까? 여러 장 있어.”하고 봉투를 뜯는다. 공책에 마음껏 스티커를 붙이며 웃는다. 나는 좀먹듯이 사라진 나의 돈과 자취방에 숨겨둔 스티커들을 아주 천천히 개방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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