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슬프고, 조금씩 일어나던 날

나의 포기일지

by 문지

오늘도 여느 때처럼 무기력한 날이었다. 정오 즈음 일어나 보니 침대 옆 바닥에 눈물 젖은 휴지가 가득했다. 어제는 저렇게 울다가 잤었다. 이렇듯 허무하게 흩어져버리는 게 속상했고, 아직도 지독하게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 때문이었다.


그 애도 수학을 했었다. 수학과 함께 사라져 버리니 이젠 첫사랑이 수학인지 수학이 첫사랑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때 나의 전부였고 있어서 든든했었다.




예전에 알던 교수님께 나 스스로밖에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염치 불고하고 보냈다. 염려 섞인 조언을 읽자니 정신이 좀 들더라. 상상 속에 갇히지 말고 직접 해보되,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도 길을 찾은 것이니 실패가 아니다.


몇 번 겪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하는 건 생각이다. 그리고 통상 생각은 행동 앞에서 아주 우습게 그 위엄이 짓밟힌다. 그러니 머리 복잡하게 이것저것 재는 건 아무 소용이 없고, 행동만이 모든 것을 이긴다.


이것저것 혼란스러운 머릿속처럼 이 책 저 책이 널브러져 있었다. 몇 주 전에 정리하느라 바빴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다 치울 마음이 나지 않아 미루다가, 책을 한 권만 집어 들었다. 똑, 소리가 나도록 책꽂이에 꽂고 차근차근 그다음 권을 꽂았다. 좋아하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밥을 먹었다. 자꾸 흐트러지는 것만 같아서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갔다.


2시간 동안 책을 읽고, 그러는 동안 오늘 수업에 안 왔냐며 묻는 전남친의 연락이 뜻밖이면서 반가웠다. 사랑 하나 지키지 못하던 바보 같은 나.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게 됐는 걸. 사실은 주는 척하면서 받기를 바라느라 늘 눈치 보고 서운해했었지. 호칭만 누나였지 나 진짜 어렸다.


아, 그래도 3학기나 버텼는데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든 기말고사라도 준비해 보자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이미 마음이 식어버린 것만 같다. 아직은 복전 취소를 못 눌렀다. 행동해야 바뀌는데, 포기가 뭔지 알아들은 건 맞지? 너 지금 수학한테 이제 헤어지자고 말한 거 알지? 그럼에도 아까워서 뒤돌아보는 나는 수학에게 형편없는 대우를 해주고 있다.


갈팡질팡, 후회하고 주저앉는 일을 많이 반복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결정왕이 되진 않겠지.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이어온 걸 안다. 지나간 건 훌훌 털고 앞으로의 내 인생을 살펴보자. 그래도 29살의 마지막은 학교 밖에서 보내게 됐네. 조금 설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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