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25. 기타 이야기1)

25. 기타 이야기1-

by 홍반장

기세는 어느덧 고1,

사춘기여서 아버지를 멀리하고 싶지만 가끔은 아버지의 요청(?)으로 길을 따라나선다.

기세는 아버지께서 좋은데 구경 간다고 하시면 그래도 아무 말 안하고 즐겁게 따라나선다.

한참 버스를 타고 지금의 종로 2가 근처에 내려 낙원상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쪽 지리에 밝으신 듯 아버지는 오랜만에 아이 손 부여잡듯이 기세 손을 꼭 붙잡고 상가 골목을 헤쳐 가신다.

상가 근처에는 먹음직스러운 떡집들이 기세의 눈과 코를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온정신이 팔린 떡집풍경이 아른거리지만 지하 상가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기세의 한눈을 낚아 채신다.

아버지는 내려가자마자 다방이라고 쓰여있는 간판 아래로 스펀지 두둑하게 넣은듯한 푹신하고 육중해 보이는 문을 열고 기세를 데리고 들어가신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반대편에 기세는 자리를 잡고 나자, 아주머니 한 분이 기세 옆에 앉으시더니 이 학생은 누구냐고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다정하게 물으신다.

아버지는 커피를, 기세에게는 요구르트와 빨대를 주시고는 쟁반을 들고 돌아가신다.

요구르트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빨대를 주시는 건 기세를 너무 어리게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빨대는 손도 안 댄다.

편안하고 푹신한 소파 덕분인지, 어두침침한 담배연기 가득한 다방 안 공기때문인지, 기세가 연신 하품을 한다. 하품 뒤 눈을 비비자 특이한 물건이 기세 눈 안에 들어왔다.


하품을 멈추고 눈망울을 반짝이게 만든 건 바로 테이블 위 동그란 재떨이 겸 라이터였다.

재떨이 라이터1.jpg

동그란 재떨이에는 원형태로 12간지 동물이 그려져 있고, 본인의 띠에 해당하는 동물의 위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동전을 넣으면 아래 구멍으로 오늘의 운세가 적힌 종이가 나온다고 적혀 있다.

신기한 듯 이것을 쳐다보다 아버지를 올려다보자 주머니에서 동전 하날 꺼내서 건네주신다. 두 손으로 받아든 동전을 들고 한참을 동전 구멍에 이리저리 대보다가 신기하게 굴러 나온 오늘의 운세란 쪽지를 조심스레 천천히 펼쳐 본다.

큰 글자로 맨 상단에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라고 적혀 있고, 아래에 작은 글자로 여러 가지 운세가 적혀 있다.

기세가 맘에 드는 건 큰 제목에 적힌 내용 그대로다.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만이 머릿속 가득이다.

이 운세 쪽지에 적힌 내용이 기세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쓰지 않은 요구르트 빨대가 세개 정도 쌓여가고,

오늘의 운세를 어느 정도 다 읽고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을 무렵,

다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저씨 한 분이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신다.

물론 기세도 일어나 구십도로 인사를 드린다.

그 아저씨는 기세 옆에 털퍼덕 앉자마자 기특하다며 기세의 스포츠머리를 쓰담으시며 담배를 입에 무신다.

아버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테이블 위 라이터로 아저씨의 담배에 두 손 모아 불을 붙여 주신다.

두 분의 대화 내용은 아버지가 일하시는 주물공장에서 생산하는 악기 부속 납품에 대한 수금 이야기이신 거 같다.

더불어 처음 보는 아버지의 쓴웃음 섞인 표정으로 공장 사정 이야기도 한참을 하신다.

그 아저씨는 꼰 다리 너머로 담배연기만 내뿜으신다.

이상한 건 아저씨가 아버지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는데 말투는 아버지가 한참 어린 동생뻘 말투다.

아무 표정 안하고 대답도 없던 그 아저씨에게

‘수금이 안되면 물건이라도 주셔야 겠습니다.’ 라는 아버지 말씀이 힘이 하나도 없이 보인다.


아마도 아버지는 오늘만큼은 수금이 안되면 그 아저씨 가게에 있는 물건이라도 들고 가실 요량이신거 같다.

끝내 아저씨 따라 아버지와 기세는 낙원상가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떡가게를 지나 악기 매장 방향으로 들어서자 처음 보는 악기들로 가득이다.

근래 들어서 기타에 관심이 많은 기세는 복도를 지나치면서 특이하고(?) 멋진 색깔별로 전시되어있는 전기기타들로 눈 호강이다.

기세는 아버지의 속마음도 모르고 오늘의 운세에 대한 기대감만 커져 간다.


아저씨가 들어서는 악기 매장에서 아저씨와 아버지는 몇 말씀을 나누시더니 기세에게 아버지는 호기 있게 기세를 보며 말씀하신다.

“갖고 싶은 거 있음 맘 놓고 골라봐!”

아버지의 말씀에 기세의 머릿속에는 벌써 어떤 거 몇 개를 골라도 될지를 묻고 있다.

통기타 1개, 전기기타 1개와 전기 베이스기타 1개, 박스형 앰프 1개를 손짓으로 고른다.

어느새 아저씨가 꺼내주신 전기기타가 들어 있는 기타가방 두개를 엑스자로 등 뒤로 걸어 메고, 한손에는 통기타와 다른 손에는 앰프를 무겁다는 소리 일절 없이 웃으면서 들고 행복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렇게 좋으니?”

아버지가 기세를 보고 오늘 두 번째 쓴웃음을 지으신다.

앰프는 아버지가 들고, 나머지는 모두 웃는 모습의 기세가 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 일하는 일 하는 형들 방에 기세는 물건을 풀어 놓는다.


한쪽에서는 기타줄을 연결하고, 다른 쪽에서는 잭을 연결하기 바쁘다.

드디어 앰프에 전원을 넣고 기타에 잭을 상호 연결하니 기타줄 안 맞는 소리가 가히 예술이다.


안방으로 아버지가 불려 들어가신다.

방 안에서 엄마의 커진 목소리가 앰프 소리에 묻혀 조그맣게 들린다.

기세는 기타들과 함께 당분간 좁고 냄새나는 형들 방에서 자야만 했다.





오묘한 오늘의 운세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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