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26. 기타 이야기2)

26. 기타 이야기2-

by 홍반장

요새 기세가 학교 내에서 인기 인사다.

전교에 전기기타 2개와 앰프, 통기타를 다 가지고 있는 사실이 소문난 것일게다.

기세의 고1 겨울방학이 왔다.

추운 겨울방학이라 따스한 방구들이 그리운 계절이다.

공장 내 일하는 형들의 방바닥이 그리 따뜻하지는 않은데, 기세 친구들은 하나둘씩 모여든다.

가끔 친구들이 귀찮은 라면 심부름을 시키면 눈을 흘기는 여동생 말고는 부모님들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친구들을 반기신다. 아마 기세 친구들은 누가 봐도 인사 하나는 깍듯해서일지 모른다.

친구들은 온 순서대로 방구석부터 차곡차곡 꾸역꾸역 모여 앉아 있다.

번갈아 기타를 양반자세 위에 올려놓고 코드를 잡는 왼손과 피크를 든 오른손을 번갈아 쳐다보며 줄을 튕긴다. 한발로 누른 펼쳐진 노래책에 나와 있는 코드를 보면서 말이다.

모두 되지도 않는 기타 반주지만 사뭇 진지하다.

방안은 앰프 소리로 웅웅되고 시끄러웠지만 어르신들이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건 그나마 공장에서 나는 기계 소음에 묻혀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안 먹는 것도 한몫을 한 듯하다.


여동생은 오늘따라 평소답지 않게 문을 열고 “라면 끓여줄까?” 하고 먼저 기세 친구들에게 묻는다.

혹시 오빠 친구들 중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다가올 이상한 전조(?)일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는 심부름의 심자만 나오면 투덜대며 문을 닫고 돌아가는 것이 다반사였던 동생이다.

물론 돌아서며 어린 철없는 여동생은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공부는 뒷전이라고 어르신들처럼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이다.


기세는 친구들과 달리 마당으로 나와 문밖을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서성인다.

이유는 성적표 때문이다.

방학이 되면 우편으로 날라오는 성적표를 부모님보다 먼저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시절에는 방학식 하는 날 성적표를 받아들고 집에 돌아가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기 겁날 때는 해 질 녘에 마지못해 들어간 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집배원 아저씨의 방문 시간이 가장 궁금하다.

기세는 본인의 이번 학기 성적이 매우 안 좋은 걸 알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는 시간보다는 노래책과 기타를 붙잡고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래책 뒤에 있는 펜팔난에 있는 주소로 편지를 써서 주고받느라 문장력은 늘었을지 몰라도 학교 성적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제일 걱정이 되는 건 엄마가 주신 참고서 살 돈으로 기타 입문서나 노래책을 산 것이 여동생에 의해 들통나는 것이다.


해가 뉘였해져도 우편함엔 성적표도 그렇게 자주 오던 펜팔 편지도 한통 없다.


저녁을 먹고 가족들이 안방에 모였다.

평상시 안 하시던 아버지의 호출 때문이다.

뜯어진 편지 봉투 몇개와 통기타를 중심으로

기타에 대해선지, 기세에 관해선지 모두 관대하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수금대신 받아온 기타 관련 이야기라면 손사래치시는 엄마.

기타 대신 피아노라도 가지고 왔더라면 그나마 기세 편이 될뻔한 여동생.

왠지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기세.

이렇게 네 명이 안방에 모여 앉았다.


자세히 안 봐도 가운데 놓인 건 분명 성적표 봉투와 펜팔 편지들이다.

펜팔편지1.jpg

아까 혹시 동생의 과잉 친절이 바로 지금 때문?


‘대체 누가 기세도 모르게 성적표와 펜팔 편지 우편물을 가져다 놓은 것일까?’란 생각과 바로 옆에 있는 통기타를 보고는 큰일 났다는 생각으로 기세 머릿속은 시커멓다.

아버지 앞에 놓인 성적표는 벌써 떠들어 보셨는지 모두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한바탕 떠들어 댄 듯 고소하다는 얼굴 표정을 짓는 새침한 여동생이 눈에 밟힌다.


아버지 앞에 통기타가 눈에 들어온다.

왜 여기 있는지 기세는 상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한마디만 물으신다.

“기타 어떻게 할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기세.

한참을 생각하시고 결심하신듯

다시는 공장형들 방에 출입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통기타를 들고나가시는 아버지.

한참 뒤 먼발치 용광로 가까이에 얼굴이 상기되신 아버지 옆모습이 보인다.

뭔가 많이 태우신다.


컥 설마.......


약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기세는 성적에 대한 반성보다는 기타의 생존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기타를 빌려 달라는 속 모르는 친구들의 거듭되는 부탁에 속이 탄다.

기타의 근황이 더더욱 궁금한 건 기세 본인이다.

기세는 몰래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형들 방에 들어가 본다.

앰프 뒤에 가려 숨겨진 기타가방. 노래책은 하나도 안보인다.

그래도 다행이 살아 있는? 기타를 보고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쉰다.

용기내어 가방을 열고 기타를 뒤집어 본다.


줄이 하나도 없는 통기타.

통기타 울림통 가운데 동그랗게 뚫린 구멍에 부적처럼 붙어 있는 하얀색 종이.




그 종이에는 아버님이 쓰신 것 같은 필체가 보인다.

‘기세야!’

흐미 기세가 열어볼 것을 아셨나 보다.

keyword
이전 10화중화동 이야기(25. 기타 이야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