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24. 연탄가스 이야기)

24. 연탄가스 이야기-

by 홍반장

기세에게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주위 어르신들보다도 우선적으로 무조건 들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다면,

아마도 우선순위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던 떠들지 않고 무엇이든지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기세는 혹시 선생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면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해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어긋난 마음은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 말씀 중에 선생님이 자주 하셔서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학교생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등상도 중요하지만 개근상을 더 높이 평가하신다는 내용과 함께 자주 하시는 말씀이시다.

기세에게 그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각과 조퇴, 결석을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게 한다.

그래서 기세에게 생긴 버릇 같은 습관 중에 하나는,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숙제를 다 해놓고, 내일 가져갈 준비물을 가방에 다 챙겨놓은 다음에 밖에 놀러 나가는 것이다.

하다못해 내일 체육시간이 있으면 전날 체육복을 입고 잘 정도로 준비성이 투철하다.

아마도 아침에 준비물들을 챙기다가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기세는 가끔 숙제를 다하고 놀러 나가기 전에 아궁이를 열어본다.

그 시절은 겨울이 찾아오면 방구들을 따스하게 지펴주는 연탄을 사용하던 때이다.

검은색 연탄이 빨갛게 변해가면 쥐포를 구워 먹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어른들이 바쁘시면 장남으로써 연탄을 갈아 넣곤 한다.

또한 연탄을 잘 갈아 넣어야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에 들어가서 아랫목에 보면 방바닥은 비닐장판으로 되어 있다.

장판이 시커멓게 탄 흔적이 있고 틈틈이 갈라진 곳도 보인다.

물론 가장 시커멓게 탄 자리가 가장 따스한 부분이다.

기세네는 취침시간이 되면 같은 방에 모두 모여 잠을 잔다.

그래서 겨울에는 아랫목으로 다섯 명 가족의 발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대신 이불 밑에 발을 넣을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가끔 그 아랫목은 수건으로 쌓여진 밥그릇이 놓여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밥그릇은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님을 위해서 따뜻한 저녁을 해드리려는 엄마표 보온밥통이 되기도 한다.


기세는 잘 시간이 되어서야 불현듯 엄마가 하신 당부 말씀이 생각이 났다.

부모님들이 늦게 들어오시면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연탄불을 갈아 넣고, 동생들 데리고 먼저 자라고 하신 말씀이다.

또한 처음 연탄을 갈 때는 연탄가스가 많이 나니, 연탄불은 자기 전 몇 시간 전에 미리 갈아 넣으라는 말씀도 떠오른다.

하지만 오늘 기세는 정신없이 텔레비전에 빠져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늦게나마 아궁이를 열어보니, 다행히 윗불이 살아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급하게 연탄을 갈아 넣고 방에 들어가 동생들과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이다.

아침이 되었는지 엄마는 기세와 동생들을 일일이 깨우신다.

그런데 오늘은 동생들 빰을 때리시며, 잠을 깨우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아침부터 기세도 머리가 띵한 것이 속이 울렁거리며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다.

왜인지 엄마는 얼굴이 상기되어 장독대에 떠오신 동치미와 국물을 누워있는 동생들 입에 넣어주시기 바쁘다.

아마도 연탄가스가 새어 동생들이 중독되어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다.

기세에게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가끔 연탄불을 갈 때 느끼는 가스 냄새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일하는 형들이 동네 약국에 가서 사온 약 봉투를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는 이제서야 양반다리를 하고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기세에게 괜찮은지를 물으신다.

기세는 약간 머리가 띵한 거 외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기세의 마음속에는 불현듯 어젯밤에 연탄을 제시간에 갈지 않은 것이 떠오른다.

그래서 충분히 타지 않은 연탄에서 나온 가스가 동생들을 맡게 되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지금 기세는 본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머리가 띵하지만 더욱 신경 쓰이는 동생들을 엄마와 같이 깨우기 바쁘다.


동생들은 눈이 게슴츠레 떠가며,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안정이 찾아갔다.

기세에게 엄마는 물으신다.

“기세야! 학교는 갈수 있겠니?”

“동생들은 학교에 못 갈 거 같으니 너도 웬만하면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

기세는 먼저 동생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가스중독에서 오는 두통 때문인지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군다.

보통 때 같으면 학교 가지 말라고 하면 신날 거 같았지만,

눈물 메인 목으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서인지 지각이나 결석은 더더욱 하기 싫었다.


기세에게 겨울 찬 바람 부는 학교 가는 길은 무슨 정신으로 걷고 있는지 동생들만 아른거린다.


교실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몇 마디 듣자 기세의 기억과 눈동자가 가물가물해진다.


양호실에 기세가 누워 있다.

옆에 서계신 양호선생님이 혀를 차신다.

누워 있는 기세 옆에 선생님이 서 계신다.

양호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에게 조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정신이 들었는지 선생님에게 기세는 여쭤본다.

“선생님! 조퇴 안 하면 안 돼요?”

조퇴가 싫은 건지, 집에 가면 혹시 부모님께 사실이 탄로 나서 혼날 생각 때문인 건지,

왠지 일찍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 집에 들어온 기세에게 엄마는

“몸은 어떠니?”라며 걱정 섞인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그 시절 보기 힘든 통조림 황도 캔을 따서 황도를 꺼내신다.

멀뚱히 쳐다보는 동생들은 안 주고, 기세에게 하나하나 숟가락으로 잘라서 입에 넣어 주신다.

황도는 보통 감기가 심하게 걸리거나, 몸에 열이 많이 나면 엄마가 자주 사주시는 음식이다.

몸이 아플때면 아무 맛도 안 나던 것이 지금은 왜 이렇게 단지 국물도 따라 마신다.


기세에게는 이제 중요한 숙제가 하나 생겼다.

집에 가면 제시간에 맞추어 연탄불을 갈아 넣는 것이다.

숙제나 준비물을 챙기는 것을 까먹는 한이 있어도 연탄불을 까먹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엄마가 기세에 대한 칭찬을 자주 하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밖에 나가기 전에 연탄불을 가는 것을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저녁 식사시간까지만 돌아오면 놀러나가는 것 가지고는 웬만해서는 잔소리를 안 하신다.




오늘도 기세는 집에 돌아와

내일 가져갈 숙제나 준비물보다, 아궁이로 먼저 달려간다.

keyword
이전 08화중화동 이야기(23. 스케이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