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낫는 법

빨리 나으려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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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5분이면 중국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화는 늘 사무실에서 받는다. 그래서 나는 그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다. 컵을 씻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떠오를 때도 있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럴 땐 노트에 단어 몇 개를 끄적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오늘도 별 생각이 없었다. 전화를 받으면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요즘 건강 어때요?”

그 한마디면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요즘 목이 좀 아파요. 잘 때 기침이 나요. 자기 전에 물컵을 옆에 두고 자는데도 소용이 없어요.”

문법도 엉성하고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 주져했다. 선생님은 나의 어눌한 말을 듣고, 어눌한 한국어로 나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제야 우리는 소통이 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매일 아침 통화를 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 전화가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약은 먹었어요?” 나는 말했다.

“전에는 약을 바로 먹었는데, 요즘은 다른 방법을 먼저 찾아요.”

그 말대로 나는 오늘 아침 소금물로 가글을 했다. 단번에 낫지는 않는다. 그래도 빠르게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회복하는 길을 택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중국에서는 배, 구기자, 신모기버섯, 대추를 각설탕과 함께 끓여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이 재미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떠올린다 했다. 예전엔 들으면서 ‘그래도 약이 낫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이해된다.

생각이 바뀐 건 아들이 군대에 간 뒤부터였다. 훈련소에 있던 아들이 매주 전화를 걸어왔다. 코가 막히고 목이 잠긴 목소리였다. 입소할 때 감기약을 한가득 싸 줬는데, 다 먹었다 했다. 퇴소식 날 또 약을 챙겨 갔다. 작은 쇼핑백 하나가 온통 약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약이 병을 낫게 하지만, 내 몸의 힘은 약하게 만들고 있지 않을까.’ 약봉지 속 알록달록한 알약들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보통 3일치 약을 준다. 그때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에게 보낼 약을 한데 모아놓으니 그 양이 적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플 때 마다 먹는 약의 양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며칠 전에도 목이 아팠다. 약은 먹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고, 밥을 먹을때 마다 뜨거운 국물을 다 비웠다. 아프다며 일찍 잤다. 그렇게 2주쯤 지나자 서서히 나아졌다.

어느 정도 목이 나아지자 이번에는 어깨가 아팠다. 목을 젖히면 찌릿한 통증이 어깨쭉지를 타고 내려갔다. 남편은 목디스크 같다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나도 걱정이 되었다. 회사 직원인 혜진 주임에게 물었다. 그녀는 초등학생 2명의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이다.

“자기는 어깨 같은 데 아프지 않아 아프면 어떻게 해?”

“왜 안프겠어요. 아프면 병원 가서 충격파 치료 받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병원을 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소염제와 물리치료가 기다릴 게 뻔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전에는 느리게 슬슬 걸었다면 이번에는 팔을 크게 흔들며 30분을 걸었다. 3~4일간 반복했다. 남들이 보기엔 나의 행동이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어깨와 목 통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요즘 나는 ‘효과가 좋은 약’이 과연 ‘좋은 것’인가를 생각한다. 빨리 낫는 게 늘 옳은 건 아니다. 약은 병을 낫게 하지만, 몸이 회복하는 힘을 빼앗기도 한다. 민간요법은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있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느리게 가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히 회복하는 것이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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