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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Nov 04. 2023

어머니와 함께 살기(6)

서양인이 다 된 딸이라니

어머니가 낮잠을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더니 내게 묻는다.

   “뭐 좀 먹었냐?”

점심을 안 먹으니 대신 뭔가 간식이라도 먹었는지 물으시는 것이다.

   “네, 송편 먹었어요.”

   “잉? 뭐?”

   “송편요. 송~~편”

천천히 크게 말하는데도 잘 안 들리는 모양이다. 몇 번 더 ‘소옹편’을 외쳤다.

내 입모양을 읽으며 엄마가 말한다.

   “오-옹 판? ... 소-옹펜? ... 아~송편”

그러더니 대뜸 역증난 소리로 핀잔을 준다.

   “아, 송편이라고 혀야지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말을 혀. 옹펜인지 송판인지..." 

   “엄마도 참. 내가 왜 송편을 송판이라고 해요. 송편이라고 했지.”

한참을 송판이라고 했다느니, 아니고 송편이라고 했다느니 주장이 오간다. .

  

   “인자 서양사람이 다 되갔고 우리말도 이상하게 하는구만. 아 왜 송편을 제대로 말을 못 허고…”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신다냐. 내가 왜 송편을 송판이니 옹판이니 하겠어요."

어머니도 뾰루퉁 튀어 나온 입모양이 풀리며 함께 웃는다.

    “참 내가 딸 데리고 뭐하는 짓이다냐. 흐흐흐… 딸이랑 같이 산께… 아 참 재미나고 웃기다.”

그러면서 일어나 부엌 쪽으로 가시며 다시 말한다. 웃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서양 가서 오래 살더니 흐흐 우리 말도 잘 못 허고 흐흐 뭐냐 이거 우리 딸이 ㅎㅎ…”


한참을 통쾌하게 웃더니 배를 깔고 엎드려 창 밖을 보신다.

   “하늘이 파랗고 흰구름이 두우웅둥 떠있구나~”

   “아이고 이제 가을이 맞네. 하늘이 참 맑고만”

어머니가 이래서 삼층을 고집하시나보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집에 온 무렵부터 목욕탕 전등이 까막까막했다. 불을 켠 뒤 2-3초 후면 전등이 흐릿하게 변했다. 저 전등을 바꿔야겠네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일주일쯤 되니 전등이 아예 안 켜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다 좀 뒤에 다시 흐릿하게 불이 들어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의자를 놓고 올라가 전등 뚜껑을 열었다. 5센티미터쯤 공간이 벌어지는데 그 이상은 안 열린다. 조금 힘을 주고 잡아 당겨도 더 이상은 안 움직이고 안을 들여다 봐도 전구가 어디 있는지 복잡한 선만 보인다. 자칫 잘못 건드려서 망가트릴까 봐 다시 뚜껑을 닫았다.

   “엄마, 나는 잘 몰라서 못 갈아 끼우겠는데… 전구가 뭔지 모르겠어. 엄마 아들한테 연락해서 좀 와보라고 해야 겠네.”

   “갸를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라고 허겄어. 저기 전파상 아저씨헌테 좀 봐 달라고 허면 되야.”

아 그렇지. 여기는 한국. 거의 모든 AS가 며칠 내로 가능한 곳. 혼자 사는 노인네에겐 이 보다 좋은게 있을까? 전화 한 통화면 친절한 기사님들이 달려와 주신다. 거의 모든 수선을 내 손으로 하든지 아니면 2주고 3주고 속이 터지도록 기다려야 하는 캐나다가 아니지. 심지어 이런 전구 갈아 끼우는 일로는 사람을 부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그 일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화장실 불을 켜니 환하다.

   “엄마, 전구 갈아 끼웠네.”

   “잉, 저그 아자씨가 와서 해줬다. 그기 전기 절약하는 특별한 전구랴. 5만 4천원이나 줬어.”

애초에 나라에서 나와서 전기 절약하는 거라고 바꿔준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신다. 에너지 절약형 LED등이었나 싶다. 노인 단독 가구라서 준 혜택이었던 모양이다.


저녁 식사 후 화장실에 다녀 온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말한다.

      “화장실이 그냥 화안하니 조옿네. 오좀 누는게 즐겁다, 즐거워.”


오늘 저녁에도 나는 웃는다. 어머니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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