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by 브니엘

오... 친구.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네.

바로 어제저녁이었지. 여느 때와 같이 그저 그런 날이었네. 더 나빠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는. 다들 마음속의 어두움과 고통을 슬며시 덮어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는, 평온하지만 불안한 그런 날이었지. 답답한 마음에 혼자 터덜터덜 처소 주변을 걷고 있었네. 해가 넘어가며 곱게 노을이 지던 중이었지. 요셉 일이 있은 후로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오히려 서글프다네. 이 아름다움이 곧 깨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복잡한 마음으로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요셉과 나눈 대화가 생각나더군. 자네, 기억하는가? 언젠가 요셉이 자신에게 불리할 게 뻔한데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잘못을 밝히고 나서 내게 했던 이야기. 저 노을이 꼭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는. 그래. 내게 꼭 그때 요셉이 했던 이야기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네. 너무나도 아름답고 장엄한 그 풍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 아... 무엇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다네. 그냥 꼭 그랬다네. 하나님께서 내게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네.

"르우벤... 너는 오늘 내 앞에 있었느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지. 이 또한 자네에게 온전히 설명하기는 힘이 든다네. 아... 그 음성이 얼마나 따뜻하고 또 다정했는지 자네는 알 수 없을 걸세. 분명 하나님께서는 나를 책망하고 계셨고 나는 책망받아 마땅한 행동을 했었지. 그런데 그 내용과 관계없이 말이야. 그 음성은 마치... 그.. 자네, 어린 자녀가 칼 같은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떼를 쓸 때 말일세.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또 혼내고 그 칼을 손에서 뺏고 다른 장난감을 손에 쥐어준 적 있지 않은가? 아이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아야 하지만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칼을 쥐고 우기는 아이의 어리석은 행동조차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마음 알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고 계셨네. 말할 수 없는 충만한 사랑이 나를 덮었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증도 단숨에 채워버렸지.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나를 책망하고 교훈하기 원하셨어. 나에게서 위험한 것을 빼앗으시고 더 나은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네가 내 앞에 있느냐는 말씀에 나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어. 나는 한순간도 하나님 앞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정말 한 순간도!

나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 선하게 보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네. 오로지 내 아버지 야곱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옳게 보이고 잘해 보이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었지. 내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그것이었어. 빌하를 범했을 때 나는 그저 후회했었네. 그 어리석은 행동이 나에게 가져온 불행한 결과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아버지의 신임을 잃었고, 형제들의 원망을 샀고, 장자권을 잃었으니까. 그 결과가 내게 좋지 못했으니까. 만약 그 일이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나마 최소한의 후회조차도 아마 하지 않았을 거야.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오, 그러나 그전에 그것은 여호와 앞에 악한 일이었네. 나는 여호와 앞에 또 내 아버지 앞에 그리고 내 형제와 가족 모두에게 죄를 지었네. 그래 놓고 나의 잘못된 행동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고 사죄한 적이 없었지. 심지어 최근에는 나는 그럴만했다며, 이것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은 아버지의 탓이라며 나를 합리화하고 아버지를 원망했지. 요셉을 귀해하시던 온갖 기억을 다 끌어모아 나의 잘못을 덮으려 했었네. 나는 옳기 원했고, 비난받지 않기 원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원했네.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게는 선한 것이었고 나를 그로부터 멀어지는 하는 것은 악한 것이었지.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 앞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 자신의 이익 앞에서 살아왔던 걸세. 그러면서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기도 했었지. 아...

먼저는 여호와 앞에 엎드려 회개했네. 말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면서 오로지 나의 이익을 섬기고 추구했던 나의 악함을. 그리고 나자, 빌하가 떠올랐네. 그리고 나의 아버지 또 단과 납달리.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야 하는,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당장 가서 잘못을 빌고 싶은 마음과 함께 고민이 되었네. 이미 묻고 지나간 일을 지금 와서 들추어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사과했는데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그러나 그 결과와 관계없이 가서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네. 그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지라도. 이미 지난 내 과오를 스스로 들추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내게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를 계산하지 말고 내 잘못에 책임을 지고 사과하라고 하나님께서 격려하시는 것 같았네.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도 같이 계셔 주시겠다고 말이야.

용기를 내서 빌하의 처소로 걸어갔네. 때마침 빌하는 노을 구경을 하고 있었지. 단과 납달리도 자신들의 어머니와 마침 함께 있었네. 내가 다가서자 빌하는 놀랐고 단과 납달리는 경계했네. 사실 그때 그 일 이후로 내가 빌하의 처소에 간 것은 처음이었네. 행여나 하는 마음 때문인지 단과 납달리는 나와 빌하의 사이를 막아섰지. 가까이 다가가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네. 잘못했다는 말보다 눈물이 먼저 터져 나왔지. 눈물을 쏟으며 진심으로 사죄했네. 그날의 일을... 나의 어리석음을... 그로 인해 겪게 된 빌하와 그의 아들들의 고통을...

나를 막아선 단과 납달리의 얼굴이 벌게지며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네. 자기 어머니를 범한 원수이자 또 자신들의 형제이기도 한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이 흔들렸지. 나의 형제 둘이 그동안 함께 자란 형제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를 해한 이에 대한 미움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하고 있었네. 마냥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쉽사리 용서할 수도 없는 나를 보면서... 고통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자 더 마음이 아팠네. 내가 저지른 일의 진짜 결과는 이것이었네. 나는 사랑하는 내 가족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걸세.

단과 납달리는 그 사과는 우리 어머니에게나 하라며 비켜섰네. 빌하는 울고 있었지. 빌하에게 잘못했다고 사죄했네. 용서를 바랄 자격이 없지만 그러나 꼭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싶었다고, 나를 욕하고 때려도 상관없고 용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울며 사죄했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데 빌하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를 용서한다고 말했네. 믿을 수가 없었네. 용서? 내가 용서라니? 어떻게 나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이 되어 어머니를 범한 나를?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놀라 고개를 들고 빌하를 보았네. 빌하는 울고 있었지만 동시에 평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지.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나를 일으켜 앉히고는 '용서할 테니 너도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무나'라고 말했네. 그리고는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 '너희도 이제 그만 르우벤 형을 용서하려무나. 미움은 너희 영혼을 좀먹는단다' 하고 말했지. 단이 무슨 소리냐며 홱 돌아서 가버리자 납달리도 그 뒤를 쫓아갔네. 빌하는 '너무 마음 상해 말려무나. 시간이 지나면 저 애들도 너를 용서할 거야.'라고 말했네. 마음이 상하다니 무슨 소린가. 나는 그 애들의 고통을 보았네. 마음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네. 내 형제들이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빌하에게 이해한다고 난 괜찮다고 단과 납달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의 처소로 향했네. 이미 날은 저물어 있었다네. 그대로 아버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네. 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잠시 멍하니 계시더니 나를 안아 주셨네. 벌써 용서했다며 나를 토닥여 주셨지. 그러더니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눈을 들어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올라왔네.

그래, 빌하를 범할 때 난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던 거였네. 라헬을 내 어머니 레아보다 더 사랑하고, 요셉을 장자인 나보다 더 아끼시던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싶었던 거지. 늘 목말랐던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이었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 아버지의 아내를 범해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네. 무슨 이런 어리석은 선택이 있단 말인가. 아니 어리석다 못해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한심한 선택이었지. 아버지 야곱은 손을 뻗어 서럽게 우는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네. '르우벤...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네. 양 떼와 뛰어놀다 넘어져 다치자 그대로 나를 업고 단숨에 뛰어 어머니에게 데려다주었던 아버지, 내가 병에 걸려 앓자, 온갖 상단을 수소문해 귀한 약재를 구해 달려오시던 아버지, 내가 빌하를 범해 단과 납달리에게 맞을 때 그 몽둥이를 몸으로 막아섰던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 굳이 요셉과 비교할 필요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아버지에게 나의 잘못을 사죄했을 뿐 아니라, 무거운 원망의 짐도 내려놓았네.

그리고 내 장막으로 돌아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단잠을 자고 일어나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네.

어제의 화해를 누구보다 기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드네. 이제 나의 삶의 기준을 나에게 이로운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고 살기로 결심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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