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찌 이리 잘 가는지 원망스럽다네. 최대한 가져온 곡식을 아껴서 먹고 있네만, 우리가 워낙 대식구이지 않은가. 아무리 모른 척하려 해도 곡식이 훅훅 줄어드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네. 식사를 할 때마다 시므온이 눈에 밟히네. 그 애는 애굽에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 것인지... 시므온도 시므온이지만 가뭄이 날로 심해지고 있으니 애굽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도 살 길이 없네.
우리 형제들은 다들 아버지 눈치를 보고 있다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애굽에 다시 가서 식량을 구해와야 하고 애굽에 다시 가려면 베냐민이 필요하고 베냐민이 가려면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하니까...
오늘 아침 남아 있는 곡식을 모두 긁어 마지막 식사를 했다네. 이제부터는 정말 주변의 이것저것을 모아 간신히 버텨야 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울 터이었지. 서로서로 눈치를 보던 중, 아버지가 드디어 먼저 말을 꺼내셨네. 애굽에 다시 가서 곡식을 구해 오라고. 일순간 공기조차도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지. 우리가 가기 싫어서 여태껏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다들 눈만 마주치고 있을 때 유다가 나서서 말하기 시작했네. 애굽의 총리가 우리에게 엄히 이르기를 너희의 막내 아우를 데려오지 아니하면 결코 양식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 하였기에 베냐민과 함께가 아니면 길을 떠날 수 없다고 말일세. 아버지는 어쩌자고 베냐민 얘기를 했냐고 한탄하시고 유다는 애굽의 총리가 묻는데 어찌 대답하지 않겠냐며 나를 믿고 베냐민을 맡겨달라 청하는, 그동안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대화가 또 시작되었네. 이제 곧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말라며 자기 처소로 들어가실 참이었지. 근데 이번에는 좀 달랐네. 아버지께서 잠시 한숨을 쉬며 침묵하시더니 이 땅의 아름다움 소산들을 그에게 드릴 예물로 챙겨가라, 전에 너희 자루에 도로 들어있던 그 돈도 가지고 가라 하고 명하셨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지. 가장 중요한 베냐민 얘기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드디어 말씀하셨네. 베냐민도 데리고 그 사람에게로 가라고 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아버지의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한 마디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박혔네. 애굽에 다시 나아가는 우리의 심정도 그러해야 했다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비록 베냐민을 데려갈 수는 있으나 우리는 도둑으로 몰릴 위험이 있지. 그렇지 않다 하들 처음부터 우리를 첩자로 보았던 애굽 총리가 베냐민을 본다고 모든 오해를 풀어주리란 보장도 없지. 그동안 아버지를 채근하긴 했으나 애굽으로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도 썩 내키는 것만은 아니라네. 시므온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우리의 가족들이 굶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도 이 길을 가는 것이라네. 우리의 생명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심정으로...
그래서 우리는 내일 아침 다시 애굽으로 길을 떠날 걸세. 오늘 분주하게 예물과 곡식을 살 돈을 준비하고 짐을 꾸려 놓았지. 채비를 마치고 유다에게 가서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네. 유다가 '아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허락하실 줄 알았어. 그래서 나선 거야'라고 하더군. 곡식이 다 떨어져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냐 물었더니 유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 그리고 지난밤 자신이 본 것을 나에게 전해주었네.
지난번 애굽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고 하네. 유다는 시므온도 마음에 걸리고 앞으로의 일도 막막하여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갔다더군.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요셉과 함께 있곤 하시던 나무 아래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발견했었다네. 아버지가 고통 중에 신음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계셨다고 하더군.
주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이제 어찌하오리이까
14년을 하루같이 여기고 애써서 얻었던 라헬은, 나의 소중한 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기적처럼 라헬을 통해 자녀까지 주셨지요. 그렇게 그 라헬을 잃고, 또 요셉을 잃고, 그녀의 마지막 흔적인 베냐민까지 사라질까 싶어 그것이 항상 내 심중에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갇히다니요... 이제 라헬의 아이들 뿐 아니라 레아의 아이들까지 거두어 가시려는 겁니까
이제 시므온, 베냐민에 이어 다른 아이들까지 잃게 될까 저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시므온... 정말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시므온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귀한 저의 아이들입니다. 주님의 이 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요셉을 편애했지요... 그 바람에 다른 아이들이 때로 상처 받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애에 대한 뭔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기대되고 설레어 특별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애를 제 어미처럼 거두어 가시고 이제 시므온과 베냐민까지...
아버지의 기도를 뒤에서 듣던 유다는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 아버지 마음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너무나 괴로웠다고 하더군. 아버지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스스로가 너무나 미웠다고 하네. 그날 요셉을 팔지 않았더라면... 온전히 우리의 선택이었던 그날의 일...
그날 이후 유다는 때때로 그 나무 근처로 밤 산책을 나갔고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시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네. 언제나 다가가지는 못하고 아버지가 눈치채시지 못하게 뒤에 서있다고 돌아오곤 했다지.
아버지의 기도 내용은 늘 비슷했었다고 하네. 유다는 때로 아버지의 기도를 듣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하네. 요셉과 베냐민이 아닌 우리 다른 자녀들을 잃을까도 걱정하시는 소리를 들으며 그래... 아버지가 요셉뿐 아니라 우리 형제들도 사랑하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 때로는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위로받으며 때로는 아버지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며 아버지의 밤기도 자리를 지켰다고 하네.
그런데 어제는 아버지의 기도가 좀 달랐다고 하더군. 한참을 침묵하시던 아버지께서 나지막이
저는... 제 아이들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조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지금까지 이 가족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우리 아이들을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또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습... 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주여... 나의 연약한 믿음을 도와주소서...
라고 중얼거리시고는 처소로 들어가셨다더군. 아버지의 밤기도 자리를 지키던 유다는 아버지의 심경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고 하네. 그래서 오늘 아침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어떤 결심처럼 느껴졌다고 하더군.
그냥... 이해가 되더군. 아버지의 고통을 보며 마음 아파하지만 또 한편 위로받았을 그의 마음이... 차마 아버지에게 다가서지도 못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애의 마음이...
그렇게 이제 우리 형제들은 다시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가네. 식량뿐 아니라 시므온을 구하고 베냐민을 무사히 데려와 아버지를 구해야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그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나아갈 뿐이지. 나의 마음도 ,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오... 이만 글을 줄이고 나는 내일의 여정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려야겠네. 또 소식 전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