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가 없어도

by 이혜연


언젠가 그리움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삭막해졌거나 우울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그리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꽉 들어찬 어여쁜 눈동자들이 아침이고 밤이고 나를 봐주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을 비우고 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마치 공간 전체를 채우고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그냥 있음으로 인해 마음이 꽉 차버리는 향기가 집을 채우고, 기억을 쌓고, 꽃을 피웠다가 밤이슬로 내려앉아 죽어가는 것들에게 숨을 돌려주는 것과 같다. 시들지 않는 마음이 매번 지지 않고 피어나 익숙하고 평범한 행복이 먼데 있는 것들에게까지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게 만들곤 한다. 가을비가 내리면 습관처럼 가슴 깊숙이 바람이 불어와 그리운 것들을 태우며 온기를 채우던 날들이 지나가 버린 까닭에 오늘, 이른 어둠과 함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도 따뜻한 금요일이 흐르듯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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