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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농담

by 이혜연


다정한 농담

결혼 15년 차. 나는 끊임없이 신랑에게 플러팅을 한다. 신호를 주고받고 암호를 정한다. 눈을 찡긋거리며 서로의 약속을 잊지 말라며 당부하지만 결국 잊어버리는 건 언제나 나다. 정확한 로봇 같은 신랑은 입력값만큼 출력값도 정확하지만 매사에 즉흥적인 나는 수많은 입력값에 비해 나오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더욱 다양하고 많은 플러팅으로 씨앗을 퍼트려놓곤 하는데 그 덕분에 부부생활에서 오는 권태기 같은 가뭄없이 숲이 자라고 그늘이 생기고 바람이 부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혼자 생각한다.


결혼 전의 나는 세상 혼자 사는 사람처럼 홀로 훌쩍 떠나거나 혼자 여행을 가서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떠돌아다니기 일쑤였는데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혼자였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시답잖은 농담으로도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관계가 생겼다는 게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안 가을장마로 몸살을 앓더니 요즘은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선선한 데다 노랗게 반짝이며 떨어지는 은행잎도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별것 아닌 모든 것들이 모여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오래된 연인인 남편에게 다정한 농담을 건네본다. 작은 불꽃이 꺼지지 않게, 안온한 따스함이 식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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