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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an 02. 2023

당신의 향기

당신의 향기


가을의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갈색향기


조금은 쓰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즈음

약간은 단맛을 내는

아메리카노의 향기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불 위의 고소한 겨울맛이 나는

따스한 향기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차가워진 날에

손을 꼭 잡고 주머니에 쏙 넣어주는

당신의 향기



어제 해돋이를 보고 점심에 오리구이 맛집을 갔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대기시간이 길었습니다. 

예약을 하고 잠깐 정원으로 둘째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먼저 나간 둘째가 문을 잡고 있더라고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가 나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요.

둘째와 첫째는 그런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도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거겠지요. 


이번 설은 제법 빨라서 1월 중순에 연휴가 잡혀있더군요. 

어디서 연휴를 보낼 것인가 의논하다가 신랑이 고향집을 걱정하는 저를 보고 

비어있는 시골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추석 연휴에는 항상 시댁으로 가니까 설에는 친정고향으로 가자는 것이었죠. 

저는 사실 시댁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친정 가는 길에 

친구들도 좀 볼까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신년인사차 시어머니, 시누이와 통화했는데 전화 끝에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전화를 끊고 신랑에게 포항 시누이 댁에서 설을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랑왈 "추석도 시댁에서 보내는데 설연휴엔 친정집에 가고 싶지 않아? 

당신 가고 싶을까 봐 거기로 가자고 한 건데." 

신랑이 왜 비어있는 친정집에서 연휴를 보내자고 하는지 그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요. 

무슨 일을 하든 내 상황이나 마음을 먼저 생각해주는 마음씀씀이가 

참 감사한 사람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하는 시간에 종종 유튜브를 듣습니다. 

보지는 못하고 강의 듣듯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는데 

지난주에는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교수님의 강의를 집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는 태초의 시간과 공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오늘은 삼프로 tv에 나왔던 깨봉수학의 박사님 강의를 들었습니다. 

2년 전에 깨봉수학 유튜브를 보고 예전에 읽었던 '전략의 귀재 곤충'이란 책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책에서 놀라웠던 건 세상 만물이 관계성에 의해 발전해 왔고 식물은 자신의 번식을 위해 곤충을 이용하려고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읽은 지 2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대략적인 것들이 제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멋진 책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게 아님을 알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선 꽃잎의 개수 또한 곤충과 연관성이 있고 그건 꽃이 살아가기 위한 진화의 한 단계였다고 말하고 있었죠. 오늘 깨봉수학의 박사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또한 발생하게 된 역사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인공지능 시대에는 모든 것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볼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 연결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죠.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 분야의 대가분들의 강의를 듣다 보면 공통으로 강조하는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물리학이든 철학이든 수학이든 모든 분야에서 "왜?"라는 물음을 시시때때로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고, 너무나 평범하고, 누구나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에도 "그게 정말 맞는 걸까?"하고 물어보고 탐구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물리학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들으며 나는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정의 내리지 않은 모든 개념은 알고 있다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아직 명확한 답을 못내리고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안다고도 못하겠죠. 

하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문을 나서면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의 향기는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정의 내리는 일이 아닌 느끼는 일이 되는 거니까요. 

저는 어떤 향기를 갖은 사람인지 스스로 궁금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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