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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an 26. 2023

꽃이 핀다고 봄은 아니지만

꽃이 핀다고 봄은 아니지만

밖은 어둡고

새벽의 칼날 같은 빛이

아직 땅을 데우지 못한 날들에도

꽃은 핀다


마른 잔 가지에도

푸른 상록수에도

하얗게 빛나는 꽃들은

겨울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개울 물소리에 피는 꽃도 있고

여름의 햇살만 기억하는 꽃도 있다

가을의 선들바람을 좋아하거나

겨울의 하얀 눈꽃을 머리에 이고서야

피어나는 꽃이 있다


꽃은 언제든

가장 적당한 자신의 시간에

피어난다



이번 겨울은 눈이 별로 없어 조금 서운하다 생각하던 참에 오늘은 아침부터 하얀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신나서 오후에 데리러 올 때 축구공과 썰매를 가져와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어린이집으로 출근하셨다. 모임이 있어 용산에 다녀와서 그림을 마무리하고 급하게 축구공과 오리 만들기,

그리고 썰매를 가지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역시나 넓은 공원은 하얀 빙판이 되어있었다.

겨울을 즐길 생각에 빨갛게 상기된 둘째를 썰매에 태우고 공원을 빙글빙글 돌았다.

빨간 썰매도 신나서 쭉쭉 미끄러졌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앙증맞은 눈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둘째와 첫째도 열심히 눈오리를 만들어 그늘진 겨울 한쪽에 쭉 늘어서 놓았다.

마른나무 몇 그루들이 지키던 텅 빈 공원이 하얀 눈오리들로 가득 찼다.

동장군이 오면 오리군대가 모두 물리칠 것 같은 기세다.

그러고서 숭고한 울음을 토해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겨울 흰 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나면 그 꽃이 진자리에

다시 봄 꽃들이 피어나리라는 것을 안다.

세상은 그렇게 자기들만의 법칙을 지키며

가장 적절한 시간에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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