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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an 29. 2023

하마터면 설렐뻔했네

하마터면 설렐 뻔했네

길고 곧은 직선

바람은 살랑이고

햇살은 적당해서

걷기에도 좋고

뛰기에도 안성맞춤인 날들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울퉁불퉁 고갯길에서

바람에 옷깃을 여미거나

비를 피해 

낯선 처마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다가


반짝 햇살에 

질주하며 집으로 들어서는 날들

그 날들 중에

하루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어느 날 덕분에

하마터면 

설렐 뻔했네



오늘은 첫째 똥그리 생일입니다. 

이제 학교에 들어가는 8살 똥그리는 1월이 되기 훨씬 전 12월부터 아니, 동생 생일이 있는 10월부터 엉덩이를 씰룩이며 생일을 기다렸습니다. 

어린이집에서 3천 원 상당의 생일 선물을 항상 받아오는데 한 반에 23명의 원아가 있으니 생일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보따리처럼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가지고 집으로 옵니다. 

작년 10월 둘째의 선물을 마치 자신의 선물인양 풀어보며 흥분했던 첫째 똥그리는 드디어 자신의 생일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1월을 맞이했고 어른 주먹만 한 머릿속에는 온갖 플랜이 짜여있었습니다.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었더구나!!)


설날 고모집에서 케이크를 불자고 한 이유는 그렇게 해서 고모와 할머니의 선물을 받으려는 속셈이고

매번 선물을 사 오는 외삼촌에게는 영상통화로 자신의 생일이 임박해 있음을 넌지시 알렸습니다.

생일날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으니 축구공이라고 해서 당근마켓에서 뽀로로 축구공 2개를 만원에 사줬더니 뭔가 허전했던 모양인지 엊그제 

진짜 선물은 언제 주냐고 뻔뻔하게 묻더라고요. 

달라고 한 선물을 줬는데 무슨 선물? 하다가 이제 입학하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옷을 사입히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처음엔 브랜드옷을 사서 입혔는데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자라더군요. 

그래서 첫째 둘째는 철마다 2만 원 정도 당근마켓에서 깨끗한 옷으로 사서 입히다 보니 새 옷을 3~4번 정도밖에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 생일은 옷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가 입학 선물로 뭘 해주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옷을 사달라고 해서 어제 새 옷을 사줬더니 너무 신나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새로 태어나는 오늘을 맞이하는데 생일이라는 그 단어하나만으로도 여덟 살 인생에서 눈이 부시게 빛나는 하루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아이들이 모든 날들을 그렇게 소풍 온 것처럼 

즐겁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선 저부터 그렇게 살아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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