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오후

by 이혜연
게으른 오후


저만치 흐느적거리는 햇살을 두고

손가락을 쭈욱 늘려보아도

오후의 긴 그림자를 잡을 수가 없다


게으른 오후

시간을 잡아끌며

계절을 길게 늘여놓는다


봉긋한 꽃망울이

바쁘건 말건

이제 막 돋아난 잎새들이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입든말든


게으른 계절은

추운 겨울 끝에 매달려

더딘 걸음을 걷는다


마당에 내놓았던 화분들을 다시 들였습니다.

게으른 겨울 조무래기들이 그늘에 숨어들었다가 뒤늦게 뛰쳐나오는 바람에 꽃샘추위가 온 탓입니다.

화분을 들여놓고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 책과 제 책을 빌리고

꽃집으로 갔습니다.

신랑이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사준다기에 꽃을 사달라고 했거든요.

아이의 방에 놓을 화분과 화장실에 꽂아둘 주황빛 장미를 사고 식물 영양제를 사서 왔습니다.

뒤늦은 추위가 가시자마자 다시 햇살 드는 화단으로 아이들을 놓아둘 생각입니다.


오늘은 미루어두었던 아크릴 작업을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는데도 역시나 함께 있는 주말은 더욱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미루는 게으름이 습관처럼 자리할 것 같아 붓을 들고 그림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미루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참 관대한 것 같습니다. 항상 이유가 있고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단지 하지 않을 핑계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요.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완성하고 싶은 만큼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 하지 않았던 일들은 결국 내일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고 그것이 포기라는 가장 달콤한 게으름을 선사하게 되는 지름길이 되곤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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