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

by 이혜연
그 해, 가을

어느 해 늦은 가을

날은 짧고

석양은 더욱 붉게 물들고 있었지


드넓은 들판에

오늘의 수고로

가득 찬 창고


별은 총총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고

은하수 멀리 흘러가면


눈이 쌓이는 날에도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로

추운 겨울밤을

포근히 보낼 수 있겠지


아침저녁으로 차가워진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몸이 움츠려 드니 마음도 조급해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벌써 한 해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텅 빈 주머니에 시린 손을 슬며시 집어넣어 봅니다. 아직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는 가을날입니다.

어렸을 때는 꽤 좋은 촉의 기시감이 있었습니다.

골목을 돌기도 전에 골목어귀에 펼쳐진 사건을 본다든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게 하려던 말이나 소식을 먼저 듣는 풍경을 동영상처럼 찰나에 본 적도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지어냈다거나 이상한 아이라고 할까 봐 혼자 비밀을 간직한 사람처럼 가슴앓이를 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양자역학에 대한 강의를 듣다 보면 기시감이란 게 실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파동의 세계. 그 안에 생명이 깃든 동체를 가진 마음이라는 생각의 파동. 그 파동 안에서 이루어 나가야 할 것들을 행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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