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쾌청한 아침

by 이혜연
낯설고 쾌청한 아침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햇살이

바람에 밀려오다

창틈에 부딪혀

가을길 한켠으로 쏟아지는 아침


따뜻한 커피 양손으로 감싸고

두 눈 감고

햇살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따뜻하게

포근하게

먼지 앉은 오래된 그림들 위로

쪼글쪼글 늙어버린

물감통 위로

노오란 빛들이 쌓여간다


무거운 짐을 안고

홀로 앉은

내 어깨 위에도



세 번을 뒤집어엎다


평소 그림을 그릴 소재를 찾으면 그걸 단숨에 그리는 편이다. 찾는 동안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그릴지 퍼즐 맞추듯 얼핏 그려놓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로 그리지만 여전히 레이어는 1장만 쓴다. 그런데 오늘 그림은 세 번을 뒤엎었다. 그리다가도 이걸 왜 그리고 있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덕분에 첫째 하교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안절부절 오늘을 완성할 그림 소재를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이 오는 시간엔 최대한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하교 전에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혀 미간을 좁히고 날카롭게 등을 구부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내가 왜 이리 집작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 어떤 방해도 없이 고요한 집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이 놓인 책상에 앉아 있는데 왜 이리 성질을 부리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별일 없이 맑고 쾌청한 아침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데 뭘 그리 안달복달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맑고 화창하고 낯설도록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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