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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Sep 15. 2022

가을, 날다

낙엽처럼 가볍게

가을, 날다

따뜻한 봄날엔

예쁜 꽃을 피워냈었지

벌과 나비 드나들며

향기에 취한

봄밤이 지나고

작은 열매

내게로 왔지


한여름 내내

쑥쑥 자라는 열매를 보며

바쁘게 오고 가다 보니

어느 아침,

어제와 다른 서늘한 바람이

문지방을 넘어왔다


가을,

날자

꽃으로 맺어

다 자란 열매는 거두고

나는 가벼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날자



새벽에 기분 좋은 서늘함을 느끼고 이불 끝을 당겨 몸을 감싸면 나도 모르게 괜히 행복을 느낀다.

차가움 속에서 포근함을 느끼는 순간 감사함이 절로 생기게 된다. 나는 꽤 오랜 기간  혼자서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으니 대략 25년을 혼자가 익숙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아파도, 외로워도, 불 꺼진 방에 불을 켜는 것도,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때 불을 꺼야 하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았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는 순간도 바닥에 배를 깔고 낄낄대며 만화책을 보는 시간도 혼자  목청껏 노래하던 시간도 혼자였을 때 더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새벽 서늘해진 기온에 자다가도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주며 꼭 안아주는 그 시간보다는 행복하지 않다. 서로가 아주 조그마한 손길을 내밀수 있는 그런 적당한 거리가 좋다. 너무 멀리 있거나 하루 종일 딱 붙어있는 것도 별로다. 한 여름, 그냥 숨만 쉬어도 그 열기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그런 날들을 무사히 보내고 서로의 어깨에 살포시 이불을 덮어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을, 서늘함이 좋다.


그리고, 하늘.

정말 눈이 부시게 푸른 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은 충분히 아름답다


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더 감사하며 살고 싶다.

서늘한 새벽 공기, 그냥 파란 하늘,

색색의 낙엽들과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지금 이 시간들.

아주 작고 시시한 것들.

하지만 그걸 느끼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늘을 더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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