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유후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작은 산골 온천마을인 유후인은 찾아가야 할 길이 있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 아니다. 터미널을 기점으로 일직선으로 쭈~욱 따라 일직선으로 간식거리가 나온다. 유명한 고로케 맛집을 비롯해 치킨과 카스테라, 롤케이크 맛집이 늘어서 있고 곳곳에 기념품 가게들이 양념처럼 들어서 있다. 파는 사람은 일본인, 사는 사람의 80%는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인사동인지 유후인인지 헷갈릴 만큼 한국어가 많이 들리는 곳이었다. 모두가 블로그를 찾아보고 익혀 공부한 탓인지 같은 고로케집에서 모두 줄을 섰고 같은 통닭집에서 함께 기다리다 마침내 긴린코호수에서 만나게 되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일직선으로 나있는 곳이건만 우리 부부는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나는 큰 그림 이외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내 생각회로는 너무 단순하다.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도 첫째, 항공권을 예약한다. 둘째, 숙소를 예약한다. 셋째, 교통편을 알아본다. 넷째, 여행을 간다 라는 기본 뼈대만 세운다. 여행짐도 하루 전날이나 아침에 정리하며 한 번에 싼다. 반면 우리 신랑은 항공권을 살 때부터 나와 다르다. 어느 시점에 사야 더 싸게 좋은 시간에 구매할 수 있는지 여행 날짜가 잡힌 날부터 몇 주간 매일 항공사이트에 들어가 가격비교를 한다. 여행 짐은 비상약부터 혹시 수건이 모자랄 수 있다는 가정까지 세우며 수건 개수까지 고심에 고심을 더해 결정해서 일주일 전부터 가방을 챙겨놓는다. 그러니 여행지에서도 길이 난 곳을 무작정 걸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걷는 나와 구글맵에서 완벽하게 길을 찾아놓은 뒤 그 길대로만 가려는 신랑과의 마찰이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길이면 어떻고 저길 이면 어떻냐는 평소의 성격대로 신랑이 이 길을 가야 한다고 하면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그렇게 특별한 다툼 없이 유후인 쇼핑거리를 걷는데 문제는 일직선이던 길이 긴린코 호수로 가려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사람이 많은 곳이 그 길이려니 하는 대충대충 내 성격과 구글맵을 장착하고 길을 찾던 신랑이 호수로 가는 방향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난 헤매면 헤매는 대로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고 그 길이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는 주의였고 신랑은 뻔한 길을 왜 헤매냐며 평소의 내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마음이었지만 지적에 대해서만은 듣기 싫었던 나는 신랑과 반대로 걷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길은 호수와 반대의 길이었고 료칸마을을 빙 둘러 돌아가서야 긴린코 호수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첫째와 기다리던 신랑은 어떻게 호수로 다시 왔는지 물었고 나는 마을 한 바퀴를 크게 돌아왔다고 이실직고했다. 역시나 그때부터 기다리던 잔소리 폭격이 날아왔다. 왜 어렵게 길을 가는지, 빠르고 쉬운 길을 찾아야지 왜 부러 어려운 길을 가려하는지 등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길을 헤매고 늦은 오늘의 나에게 퍼부으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길을 헤맸기 때문에 료칸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고 헤맸어도 호수를 봤으니 된 것이었다.
계획이 너무 많은 남자는 얼른 호수를 구경하고 줄이 길어 못 먹어본 고로케맛집도 들러야 하고 올빼미 상점거리도 들러봐야 한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처럼 평준화된 레시피에 맛이 얼마나 다를까 모르겠지만 난 그냥 온천수로 인해 물안개가 스며있는 잔잔한 호수를 물멍 하며 보는 것이 더 좋은 그런 감으로 사는 여자였기에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이었지만 아이들이 고로케를 먹고 싶어 하니 다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신랑은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이지만 나는 우리가 참 많이 달라서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길을 찾을 때 신랑은 구글맵을 보지만 나는 그 지역에 있는 가게들의 위치나 하천, 전광판의 광고들을 종합해서 길을 찾는다.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다는 건 그런 수요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혼자서 구상해 본다. 그러면 길의 방향과 사람들의 습성이 언뜻 그림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길을 찾는 버릇이 들면 그것이 아닌 길은 모두 틀리고 실패했다는 생각에 빠져들 수도 있다. 쉽고 빠른 길을 놔두고 내가 실수해서 헤맸다는 생각을 하면 자책감과 패배감이 두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세상은 의외의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 삶의 방향을 틀 때가 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생각하다 보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기가 쉽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잦은 실패와 좌절이 나를 보호하려고 이런 대충대충 감으로 사는 여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실패와 더 많은 시행착오를 해본 경험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넓은 기회의 아량을 베풀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항상 대충 하는 일에는 실패의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계획대로 딱딱 스케줄을 짜는 남편을 만나게 한건 하나님의 커다란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