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땅을 가꾸는 일이 특별히 힘들 것도 대단할 것도 없어 보였던 나의 도시 텃밭 경작기는 하루하루 마음이 기울수록 더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도시 가장자리, 더 이상의 확장을 방지하기 위한 자연 댐 같은 그곳엔 작은 일개미들이 각자의 일용할 양식을 기르는 재미에 6월 때 이른 폭염에도 호미질을 하고, 덩굴을 올리며, 퇴비를 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 <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어른 주먹만 한 땅 속에 수많은 미생물들과 그들의 활동으로 생겨나는 갖가지 삶과 죽음에 대해 아주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드는지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가 좋아지고 있다. 예전에 어느 PD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 몇 대 없었던 대형 Tv가 70평 아파트 거실 한 벽면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 났다. 그때 그분도 순전히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커다란 텔레비전이 필요했다고 하셨는데 그때 그 마음이 요즘 내 마음이다.
사실 텃밭을 가꾸어 작물을 먹는 것은 요즘처럼 바쁘고 편리함에 익숙한 시대에는 불필요할 만큼 효율성이 떨어지는 활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제 효율성보다는 회복력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할 수도 있다. 급격히 늘어나는 우울증과 고독에 대한 두려움, 관계 맺지 못함으로 인한 외로움등은 자기 스스로를 진정 받아들임이 밑바탕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려면 온전히 생명에 대한 것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활동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키우는 일이었다. 한끼 식탁에 올린 푸성귀 한줌을 얻기 위해 몇 날 며칠, 정성을 기울이는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깊은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