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처럼 하는 일들이 있다. 왠지 삼시 세 끼는 먹어야 할 것 같고, 먹었으니 커피 한 잔은 마셔줘야 할 것 같다. 외로운 히키코모리가 아님을 남에게 증명해야 할 것 같아 억지로 약속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은 공허한 수다로 허기진 배가 텅 비어버리듯 가슴도 스산하고 괜스레 더 쓸쓸해지곤 했었다. 그러다 못다 한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울리지 않는 휴대폰의 연락처를 뒤져보기도 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진주알을 찾는 기분으로 수많은 번호들을 뒤적거리다 결국 찾지 못하고 외로움이란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웅크려 잠들기 일쑤일 때가 있었다. 그렇게 어쩌지 못하는 패배감과 습관처럼 행해지는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을 그저 그런 의미 없는 날들로 만들어 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며 하루하루 즐거운 일 하나는 만들어주자는 것이 나의 육아방침이 되었다. 즐거움을 내일 미룰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 어렸을 때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하며 훗날 후회한다 해도 지나버린 시간만큼 우리의 간극은 멀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곁을 맴돌아 줄 때 함께 추억을 쌓아가자고 게으른 내 몸뚱이에게 주문을 걸곤 한다. 그래서 평일에도 학교 가기 전에 함께 만들기를 한다든지 놀이터에서 잡기 놀이를 하다가 등교를 하기도 하고 새로운 간식을 찾아 달고나를 만들기도 하고 비 오는 날 막걸리 야채빵을 함께 만들어보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들 축구 수업이 있어서 오전엔 운동장을 누비고 오후에는 서울역에 있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reSOUND : 울림, 그 너머>를 관람하기 위해 아이들과 지하철을 타고 갔다.
파도가 무서워요.
사전 예약만 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영상도 너무 아름답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옛 서울역의 모습을 보존한 채로 이런 멋진 공연을 기획하고 무료전시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겁쟁이 연년생형제는 높은 파도를 보더니 겁을 먹고 엄마에게 도망쳐왔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좋아하는 새우튀김덮밥과 스파게티를 먹고 엄마와 공연을 본 아이들의 발걸음은 종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별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삶에 추억 한 스푼을 더한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