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의 시댁 탈출기
수희 언니께 (열 번째 편지)
이번 명절이 지나고 동서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동서가 전을 부치다가 허리가 아팠는지 삼촌한테 같이 좀 일을 하자고 했던 모양이에요. 동서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서 오래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화를 내시지는 않고 ‘아니다, 쟤는 밖에서 할 일이 있다’고 하고는 삼촌을 불러서 난방이 잘 안 되는 현관 옆 골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곶감도 나누어 드시고 하셨답니다. 그 방이 추워서인지 전을 다 부치지 마자 얼른 거실로 들어오셨다면서 동서가 슬프게 웃었습니다.
옛날에 어머니께서 훨씬 젊으실 적에 명절에 남편이 설거지하는 저를 도우려고 부엌에서 고무장갑을 끼는 것을,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치시고 이럴 거면 당신이 하신다고 저희를 밀고 화를 내서 내쫓기도 하셨던 것을 떠올려보면 어머니께서도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했으니까 그거에 맞춰서 며느리를 배려해 주시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는 시부모님께서 옛날에 화목했던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시는지 알아요. 시아버지와 남편, 삼촌은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들처럼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제가 앞치마를 하고 공손한 태도로 다정하게 웃으면서 “어머니, 그랬어요. 저랬어요.” 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귀한 살림 비법을 배우고 익혀가던 그때를요. 어머니께서 이번 명절에 동서와 전을 부치시면서 연신 쓸쓸하다고 하셨대요. 제가 발을 끊은 뒤로 어머니께서는 동서와 속마음을 진실하게 털어놓는 좋은 친구처럼 지내시기로 하셔서 그때에도 동서를 앞에 두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셨대요.
‘나는 왜 이렇게 며느리 복이 없는지 모르겠다, 누구네 며느리는 뭘 해줬고, 돈을 얼마를 해줬고, 매일 전화를 하고 같이 여행을 하고 그러는데 나는 이렇게 맨날 참기만 해야 되는 게, 인내만 해야 하는 삶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씀하셨대요. 하시다 보니 어떻게 가정교육을 받은 건지, 며느리 둘 다 그렇게 어른 섬길 줄을 모른다고, 내가 왜 이런 벌을 받는지 알 수가 없다는 신세한탄을 하시면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셨고 어머니께서 동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보셨다고 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며느리 복이 없냐? 나한테 무슨 죄가 있어?”
동서가 당황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는데,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어물어물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화를 내셨다는군요.
“하긴 너도 내 기막힌 사연에 할 말이 없겠지. 나처럼 베풀고 며느리를 배려해 주는 시어머니가 또 어디 있겠냐? 하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어?”
친구처럼 가까운 어머니께서 대화를 마무리하셨던 마지막 말을 동서는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인격적으로 대우해 달라는 제 요구가 이렇게 관철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면 저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딸 같은 며느리’로 지내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언니를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게 됐지만 아무래도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참이나 시댁에 방문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언니가 답장에서 저를 '미친년'이라고 불러주셨던 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봤어요. 역시 이게 뉘앙스가 묘해서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어떤 뜻으로 쓰셨는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기운을 내서 잘 지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대접 밖에 못 받아온 것이 창피해서 어느 누구한테도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는데, 이제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언니.
2019. 4.22. 윤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