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의 소심한 반항

그건 개똥이었네.

by 알로

요새 큰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들릴락 말락하게 말을 합니다. 말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냅니다.


어제 병원에 가기 전에 아이 방에 들러서 뭘 좀 사다줄까 물어봤습니다.


김밥 사다줄까?


말이 없습니다.


사다달라는 뜻입니다.


힘없이 눈을 꾹 감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울컥하고 어떤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녀석 머리통을 딱 한 대만 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후련할까?


다 헛된 꿈입니다.


큰아이가 학원에 간다고 해서 현관에서 배웅을 했습니다.


학원 잘 다녀 와.


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멋쟁이 개미새끼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 미용실 좀 예약해줘.


뭐라고? 안 들려. 좀 크게 말해 봐.


그 미용실 예약해 달라고.


알았어.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 생각이 나서 예약을 하고 내역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고맙다는 말 대신 힘들다, 괴롭다, 싫다, 다 밉다라는 말이 연달아 올라왔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달수씨와 산책을 했습니다. 달수씨는 어제 광견병 주사를 맞아서 컨디션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달수씨가 눈 똥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를, 보통은 산책로 중간에 있는 나무 데크 다리를 넘어가서 개똥수거함에 버리고 오는데 오늘은 거기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까지 맞아서 집에 오자마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일단 잊어버리지 않게 검정 비닐을 열어서 개똥을 변기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달수씨 발을 닦아주고 아침 개껌을 선물로 주니 급한 일은 대충 해결한 셈입니다.


그리고 남편 방에 가서 이러저러해서 아이가 힘들다고 하니 당신이 좀 봐주라고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 비해 아이에게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이해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남편은 고등학생이 다 힘들지 안 그런 학생이 어디에 있냐?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입을 꾹 다물고 개미새끼의 말도 안 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꾸 남편 방에 있는 간식을 가져간다고 하면서 이상한 놈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맞는 말인 것 같아서 반박하기가 어렵더군요.


대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남편이 우뚝 멈춰 섰습니다.


이 똥은 뭐야?


아차! 달수씨 똥을 변기에 넣기만 하고 실수로 물을 안 내린 것입니다. 원래 달수씨 똥은 산책 중에 늘 개똥수거함에 버리고 오기 때문에 남편은 이게 개똥이라고는 생각 못한 것 같습니다.


녀석이 하다하다 똥 누고 물도 안 내린다고 남편이 더욱 화가 났습니다.


저는 남편이 큰아이가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반항하고 있다고 오해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달수씨 똥이라고 하면 남편이 더럽게 물을 왜 안 내리냐고 저에게 잔소리를 할까 봐 그런 것이 절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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