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꽃게를 사랑하여

이 꽃개나 저 꽃게나 왜 상태가 다 그래요?

by 알로

갑각류를 좋아합니다. 알배기 꽃게가 제철이라고 하니 먹어봐야겠지요. 알배기 암꽃게를 검색해 보니 너무 비쌌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비겁한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꽃게를 죽이는 일을 어려워합니다. 네, 맞습니다. 피를 보는 힘든 일은 하지 않고 살점만 취하려고 하는 모습이 저도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활전복도 안 (못) 먹습니다. 어쨌거나 살아있지 않으면서 값은 저렴한 꽃게를 찾다 보니 냉동꽃게가 보이더군요. 상품평을 보니 주황색 알이 가득 차 있고 살이 실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쪄서 먹으면 맛있다고 했습니다.

꽃게 박스가 도착하고 상자를 개봉해서 몇 마리를 쪘습니다. 게의 크기도 크고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게딱지를 열기 전까지는요. 게딱지를 열자 암컷 꽃게 등딱지에 검은 먹물을 푼 듯이 탁한 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저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것을 살짝 마셔보았습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히 비리다는 건 분명히 알겠더군요. 어쨌든 살도 파내서 먹고 저 나름으로는 괴로움을 꾹 참고 최선을 다해서 게를 먹어치웠습니다.

둘째아이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꽃게가 도착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크고 맛있는 꽃게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나머지 꽃게를 쪘습니다. 둘째가 이게 맛있는 건가 도대체 무슨 맛인가 갸우뚱하는 사이에 재빨리 함께 다 먹어 치우려고 했던 것이지요. 냉동 꽃게라 살이 싱싱하지 않고 물크러지는 것인데, 아이가 꽃게살이 부드럽다고 하면서 웃어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니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저 꽃게를 다 해치우려면요. 아니나 다를까 겨우 두 번째 꽃게에 검은 구정물 등딱지가 나타났습니다. 둘째는 비명을 지르며 이걸 먹어도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응, 당연하지. 괜찮은 거야.

저는 태연하게 등딱지를 제 접시로 옮기고 그걸 다시 살짝 싱크대에 갖다 버렸습니다.

세 번째 게딱지는 더 심했습니다. 도저히 이건 못 먹겠다.

아이 접시에 비교적 살이 실하고 멀쩡해 보이는 게 몸통만 몇 개 남기고 나머지는 싱크대로 다 옮겨서 버렸습니다.

너도 먹어 볼래?

살이 통통한 게살을 발라서 아까부터 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던 달수씨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녀석이 제 손끝에 모아놓은 게살을 받아먹지 않아서 바닥으로 그것이 툭 떨어졌습니다. 게를 찌고 살점을 뜯으면서 국물이 튀어서 이미 온 집안이 비린내로 가득한데 바닥에까지 흘린 걸 보니 달수씨가 미워지더군요.

달수씨는 꽃게살을 물끄러미 보더니 천천히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안절부절못하더니 갑자기 그 살점에 머리와 주둥이를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길에서 바짝 마른 지렁이 사체를 보았을 때 보이는 행동 아닙니까? 아, 지렁이 사체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저는 오랜 수수께끼가 풀린 것에 대한 후련함에서 오는 미소를 지었다가 잠시 뒤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모든 것이 악몽 같았습니다. 저는 꽃게와 관련된 모든 것(부산물, 껍데기, 박스, 비닐)을 당장에 꽁꽁 싸서 갖다 버렸습니다. 집 안을 환기도 시키고 테이블까지 몇 번이고 싹싹 닦고 커피를 한 잔 타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무고한 커피 잔에서 비린내가 진하게 났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일 참을 수 없는 것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온 집안을 활보하는 달수씨의 조그만 갈색 머리통에서 진동하는 비린내였습니다.

가난한 내가 꽃게를 사랑하여
오늘 밤 강아지 머리에서 비린내가 훅훅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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