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이름을 딴 미용실 이름이 불안했지만...
집 근처에 미용실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주변에 흔한 채소 이름을 딴 미용실인데, 미용실 이름을 밝히면 제가 사는 동네가 나오고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대이니 편의상 배추헤어라고 하겠습니다.
시내에 있는 큰 미용실을 검색해보니 파마 비용이 깜짝 놀라게 비쌌습니다.
저희 큰아이가 그 중 하나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학생 할인을 받아 2만 3천원에 자르고 있거든요, 저희 남편은 언제나 블루클럽에서 머리를 자르면서 큰아이의 사치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 이번 토요일 오전에 미용실 좀 예약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요새 아이답게 다른 사람 눈을 엄청 의식하고 자기애가 강한 친구입니다.
흥! 그러거나 말거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쟤도 자동으로 블루클럽행입니다.
어쨌든 저는 주변의 미용실을 찾아보다가 집에서 제일 가깝고 어딘가 이름이 만만한 배추헤어로 가기로 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벌써 친숙한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시내의 큰 미용실은 으리으리하고 번쩍거리는데다 다들 지나치게 친절하고 이상한 높임말을 써서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거든요.
스타일을 어떻게 할지 미용사님께 일임하면서 말씀하시는 대로 선선히 영양도 넣겠다고 했더니 결국 가격표에도 없는 제일 비싼 파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찰칵 소리가 나더니 비행기에서 기내식 먹을 때 쓰는 것 같은 테이블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두 손을 올려놓으니 편하더군요.
미용사님이 제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지도록 약을 바르고 잠깐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후 칸막이 저쪽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나더니 종이컵에 뭔가를 담아 주셨습니다.
수박 좀 드세요.
저는 미용실에서 뭘 먹거나 마시는 걸 싫어합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아침 공복에 차가운 과일이라니... 저는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맨손으로 안 자르고 비닐 대고 자르고 깨끗하게 담은 거예요.
아주머니가 저를 보고 정답게 웃으셨습니다.
저, 그게 아니라...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감사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수박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렇게 위생을 중시하시면서 이쑤시개를 안 주셔서 저는 손가락으로 깍두기 같이 잘린 수박조각을 집어먹어야했습니다. 머리를 감으러 가면서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조금 뜯어 얼른 손을 닦았습니다.
미용사님은 제 머리카락을 말아서 기계에 매다셨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제가 메두사처럼 보였습니다.
아, 참외가 있었지. 달아요, 달아.
이번에는 커다란 참외를 네 등분해서 가져오셨습니다. 저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상냥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순간 미용실 문이 열리고 어린이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는 급하게 참외를 제 손에 쥐어주시고 환한 미소로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셨습니다.
저는 얼결에 참외를 받아들고 낭패감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어린이가 의자에 앉자 미용사님은 손님에게 참외를 먹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아이는 먹기 싫다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곧바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싫다는데 왜 자꾸 나한테만 과일 주시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어른스럽게 참외를 씹어 먹었습니다. 먹다보니 참외가 미끄러워서 바닥에 떨어뜨릴까 봐 두 손을 다 적시게 되었고, 참외가 너무 크다 보니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그것이 기울어지면서 제 코끝까지 그 안에 담가져 끈쩍끈쩍한 참외즙이 묻었습니다.
‘휴지를 달라고 할까?’
꼬맹이 머리를 자르느라고 집중하고 있는 미용사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손을 살짝 치켜들고 가려운 코를 긁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저는 눈을 꾹 감았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끔찍한 기계에서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앞머리를 좀 자르면 어떨까요?
얼굴이 네모져서 앞머리는 안 잘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다른 엄청 비싼 미용실은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머리를 넘겨주는 척 하면서 살짝 앞머리를 자릅니다. 네네, 소신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머리가 아주 근사하게 완성됩니다. 미용사님들은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척하면서 항상 자신들 마음대로 합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거 사실 저도 압니다. 그냥 의견이 있는 척 해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미용사님은 정말로 앞머리를 안 잘라주셨기 때문에 저는 몹시 아쉬웠습니다. 머리카락를 말리고 영양제까지 바르고 보니 거울 속에 베토벤이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카드도 안 긁고 계좌이체로 비용을 지불하고 배추헤어를 나오면서 호들갑스럽게 이제 여기 단골이 되겠다고 말했지만 저는 사실 미용실에 가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일 년에 두 번밖에 미용실에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