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동네 미용실
며칠 전에 채소 이름을 딴 동네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습니다.
네? 6만 원이라고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 그런 거 없고요. 원장님께서 보시고 제일 잘 어울릴 만한 스타일로 해주세요. 얼른 시작해 주세요.
언제나 그렇듯이 결과물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근데 이거 어디선가 본 듯한 스타일인데...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 졸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식구들이 제 머리스타일을 보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왜 그러지?
달수씨랑 동네 강아지놀이터에 갔더니 틀린 말은 하는 적이 없는 아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개랑 개주인이랑 머리스타일이 똑같네.
네?
거울이 없어서 그림자를 봤더니... 과연 비슷하더군요.
한파가 오거나 말거나 용감하게 추위에 맞서 산책을 하는 달수씨를 보면서 이렇게 묻는 분들이 계셨어요.
너는 춥지도 않니?
제가 달수씨와 똑같이 곱슬거리는 털로 외출을 해보니 생머리일 적보다 확실히 따뜻하더라고요. 경제적이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는 친환경 헤어스타일을 작가님들께 추천드립니다. 미용실에 가실 때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실 샘플 사진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 참고하실 만한 이미지도 첨부합니다.
예전에 달수씨 미용이 잘못되어 개들이 북적거리는 시간을 피해 오후 5시에 개놀이터에 갔던 시절이 있습니다.
동네 강아지들이 모여서 노는 시간에 가면 꼭 강아지 간식을 나눠주는 언니가 계십니다. 언니는 직접 소고기를 사다가 건조기에 말리고 그것을 가위로 잘라 통에 담아 오시는데요, 그래서 언니가 간식통을 여시면 놀이터 강아지들이 다들 모여들게 됩니다. 그 언니를 가운데에 두고 동그랗게 섰다가 “앉아!”라고 하시면 일제히 그 자리에 앉습니다. 우리 달수씨는 물론 언니가 가방만 뒤적거리셔도 일등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또한 다른 보호자분이 몰래 자신의 강아지에게만 간식을 주는 경우도 절대 놓치지 않고 뛰어갑니다. 가서 눈을 딱 부릅뜨고 힘을 빡 준 다음! 자리에 착 앉습니다. 달수씨는 생전 다른 강아지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 법이 없는데 간식 배급을 방해하는 녀석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달수씨가 통통해서 개놀이터에서 가끔 놀림감이 돼 속상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미용을 한 뒤로는 다들 달수씨를 보면 아예 소리 내어 웃으셨습니다.
언니 한 분이 달수씨의 사자발의 털을 좀 깎아주면 위생적이고 개도 안 미끄러져서 좋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달수씨를 데려가 미용기구로 한참을 윙윙거리더군요. (달수씨는 애견미용사님께 간식만 받아먹고 막상 털을 깎으려고 하면 으르렁거리고 행패를 부려서 집에서만 미용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 안 되겠다.’ 하면서 미용기구를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이라 추울까 봐 우리는 달수씨 털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그냥 두었는데 강아지 앞발만 닭발처럼 깔끔하게, 지나치게 깔끔하게 미용을 해버렸더군요. 그것도 한쪽 다리만요.
남편이 이런 닭발로 산책 다니면 발 시릴 것 같다고 하면서 벌써 민 건 어쩔 수 없고 나머지는 봄이 오면 마저 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는데 막상 놀이터에 갔더니 동네 분들이 다들 웃고 놀리셨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제가 이발기를 들고 나머지 한쪽 앞다리만 밀어주려고 했더니 달수씨는 이 닭발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으르렁거리면서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달수씨의 말려 올라간 입술과 그 아래에 드러난 앙증맞은 앞니에 눌려 저는 그만 미용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닭발 강아지와 저는 개들이 모여드는 시간을 피해 놀이터에 가서 둘이 시시한 공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달수씨의 한쪽 다리털이 얼른 자라고 가능하다면 우리의 살도 좀 빠지기를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큰아이가 요새 슬럼프가 왔는지 까칠해져서 진상 부리지 말라고 조공으로 빵을 좀 사다 바치려고 빵집에 갔습니다. 달수씨를 근처 나무에 묶어 놓고 토스트를 해줄 식빵이랑 다른 빵을 샀습니다. 가게에서 나온 저를 보고 화가 나서 펄쩍 뛰는 달수씨에게 너는 빵집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거듭 사과를 했는데도 화가 나서 제 발을 물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빵 냄새를 좀 맡게 해 줬더니 집에 가서 그걸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꼬리를 치켜들고 춤을 추는 듯이 나풀나풀 흥겹게 걸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쥐고 있는 빵봉투 냄새를 다시 맡아보고 코로 밀었다가 저를 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집에 와서 요리를 하다가 아이들이 다 먹어치우기 전에 달수씨에게 줄 빵을 미리 조금 잘라두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 흩어진 다음 달수씨를 살짝 불러서 그것을 주니까 천천히 냄새를 맡아보더니 입에 물고 허둥지둥 자기 캔넬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는 살이 빠지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 제가 선택한 새로운, 마지막 다이어트 방식인 것입니다.
개랑 주인이 닮아간다는 말을 들으면 왜 이렇게 심란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달수씨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