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너머 마을로 가던 날들
가을이 오기 전,
나는 매일 산골 마을을 돌아다녔다.
내 담당 마을은
그 면 전체에서 가장 오지였다.
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논두렁을 지나고,
밭두렁을 넘어,
산길을 굽이 굽이 걸어 걸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풀잎이 바지자락을 스치고,
발끝에서는 마른 먼지가 일었다.
마을에는 회관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장 남댁 사랑방에 모였다.
낮은 천장, 삐걱거리는 마루,
방 안 가득 퍼지던 따뜻한 아랫목 냄새.
나는 구겨진 공문 한 장을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퇴비를 부지런히 만들어야 한다는 말,
시범 마을로 선정된 만큼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말.
농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오래 묵은 피로가 비쳤다.
성과는 생각보다 더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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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은 싸늘했다.
산업계장님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하게 울렸다.
"다른 담당자는 벌써 목표를 넘겼다는데..."
"왜 네 마을만 이 모양이냐."
나는 얼떨결에 웃었다.
습관처럼, 아무 뜻 없이.
그 웃음은
회의실 안 공기를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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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나는 조용히 숙직실 뒤편으로 걸어갔다.
낡은 창고 옆, 햇살만 비치는 빈 공터.
바람이 약하게 불어 먼지를 일으켰다.
나는 그곳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렸다.
말없이, 조심히,
햇빛 속에서 혼자 울었다.
나는 거의 혼나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서러움은 참으려 할수록 더 거세게 북받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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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지났을까.
숙직실 벽 너머로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애가 뭘 안다고 그렇게 혼을 내요."
"실수야 누구나 하는 거지."
재무계장님의 목소리였다.
단단하고, 다정했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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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알았다.
꾸짖는 손만 있는 줄 알았던 세상에,
조용히 덮어주는 손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서러움 뒤에 찾아오는 작은 따뜻함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