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하나에 담긴 따뜻한 역사와 무한의 의미

도넛데이의 어느 오후, 뜻밖의 위로와 깨달음을 만나다

by 운조



무료 도넛을 따라간 하루.

그 속엔 전장을 지켰던 여성들의 헌신과 눈물의 역사,

그리고 마음 한 조각을 밝혀준 작지만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단순한 모양새 속에 우주의 진리를 품고 있는 수학적 아름다움까지.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쨍한 햇살 아래,

어린 소년이 길가에서 ‘Free Donuts’라고 적힌 팻말을 현란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의 작고 여윈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기찬 몸짓은 소리 없는 외침 같았다.

"Free Donuts!"


그 외침이 가리키는 도넛 가게 앞에는 이미 수많은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주차되어 있었고,

가게 안은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백발 노인의 잔잔한 미소로 가득 찬,

설렘 어린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이 도넛 가게는 주인이 바뀐 후 가격이 크게 올랐다.

아침 출근길, 커피 한 잔과 도넛으로 허기를 달래던 이들에게

이곳은 한때 성지였지만, 이제는 줄을 서도 선뜻 지갑을 열기 망설여지는 곳이 되었다.


사실 나 역시 도넛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다.

기름 내음과 진한 단맛이 입에 남는 간식을 즐겨 먹지는 않는다.

다만 아주 가끔, 세상의 단맛이 문득 그리워질 때면 이끌리듯 가게 문을 열곤 한다.

그날도 나는 무심히 중얼거렸다.

'공짜라니, 다들 좋아하긴 하네…'





오후가 되자, 아까 그 소년의 힘찬 손짓이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마치 "어서 오세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부르는 듯했다.

'나도 한 번 가볼까? 설마 벌써 끝났을까?'

엉뚱한 기대를 품고 지갑을 챙겨 들었다.


가게 문을 열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스쳤다.


"저기요, 오늘... free donuts 주나요?"

기대 반, 설렘 반이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아직 안 끝났어요! 어떤 도넛 원하세요?"


고르라는 말에 순간 눈이 반짝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메이플 아이스 도넛을 골라 들었다.

작은 종이봉지에 담긴 도넛 하나를 받고 가게를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공짜라서 웃었을까?

그렇다기보다는, 그 도넛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고

왠지 모르게 더 고마웠다.

마치 ‘나눔의 미학’이 그 속에 녹아 있는 듯했다.


무릇 사람은 나눌 때 비로소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 단순한 간식을 넘어, 전장의 위로가 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은 바로 *도넛데이(National Donut Day)*였다.

매년 6월 첫 번째 금요일, 미국에서 기념하는 이 특별한 날은

단순한 상술이나 단 음식에 대한 찬양이 아니었다.



그 유래는 1938년, 미국 시카고의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 제정한 기념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구세군 소속의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도넛 라시스(Donut Lassies)’라 불렸다.


상상해보라.

낡은 군용 텐트 안, 얼기설기 엮은 철제 버너 위에서 기름이 펄펄 끓고 있었다.

탄내와 흙먼지, 무너진 참호 사이에서 그녀들은 두 손에 밀가루 반죽을 꾹꾹 눌러가며 도넛을 만들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도 텐트 안은 빗물과 진흙으로 질척였지만,

그녀들은 눅눅해질세라 재빨리 도넛을 튀겨 병사들에게 건넸다.


한 병사는 도넛을 한입 베어 물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만들어 주던 도넛 맛과 똑같아요.

비 오는 날이면 항상 만들어 주셨는데…”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기름이 부족한 날에는 군용 헬멧을 뒤집어 기름을 끓이기도 했다.

도넛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그들에게 잊고 있던 평온한 시절의 기억과 고향의 온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녀들은 뜨거운 기름 냄새 속에 기도와 위로를 담아 도넛을 튀겼다.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그의 서정시 『엔디미온(Endymion)』에서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라고 노래했다.


그 도넛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의 아름다운 증거였다.

그 따뜻한 마음이 오늘날 도넛데이의 시작이 된 것이다.



-도넛과 수학: 연속된 세계의 상징


오늘의 도넛, 그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이 튀겨진 반죽 고리는 단순히 맛있는 간식을 넘어,

*수학의 위상수학(Topology)*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토러스(Torus)'라는 도형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수학자들에게 도넛은 원형의 구멍이 뚫린 연속적인 표면,

즉 '한 개의 구멍을 가진 도형'을 상징한다.

컵에 달린 손잡이도 도넛과 같은 위상적 성질을 가진다.

위상수학에서는 아무리 구기고 변형시켜도,

구멍의 개수가 변하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같은 도형으로 본다.

컵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 수 있고,

도넛을 컵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넛의 연속적인 형태는 마치 삶의 연속성과도 닮아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헌신과 위로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듯이,

우리의 삶 또한 수많은 변화와 왜곡 속에서도

본질적인 '인간애'라는 구멍은 변치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겉모습이 아무리 달라져도,

나눔과 사랑이라는 근원적인 고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을 도넛은 말없이 보여주는 듯했다.



-오늘의 도넛, 그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오늘날 도넛데이는 미국 전역에서

무료 도넛 제공, 할인 행사 등으로 활기차게 기념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나눔’과 ‘기억’에 있다.


내가 받은 도넛 하나에도,

어쩌면 누군가의 헌신과 배려의 온기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 도넛은 공짜이기에 맛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날의 웃음과 역사, 그리고 타인을 향한 따뜻함이

함께 녹아 있었기에 더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하나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을 소환했다.


그 도넛은 나에게도 단순한 간식 이상의 의미를 전해주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도넛 한 조각이

수십 년 전의 숭고한 역사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새벽 어스름 속에 피어난 나눔의 미학


그리고 문득, 도넛 하나가 내 손에 오기까지의 새벽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해가 뜨기 훨씬 전,

새벽 3시부터 반죽을 치대고, 기름을 달구며 하루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 새벽의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단맛이 가능했다.

도넛은 단지 설탕과 밀가루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정성과 부지런함이 스며든 따뜻한 나눔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수고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도넛 하나에도 고개가 숙여졌다.


나눔의 미학은 때로 이렇게 조용히,

새벽 어스름 속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한입의 역사, 그리고 일상을 기념하는 마음


다음 도넛데이는 2026년 6월 5일 금요일.

그다음은 2027년 6월 4일, 또 2028년 6월 2일이다.


앞으로도 6월 첫 금요일이 되면

나는 도넛 가게를 한 번쯤 떠올릴 것 같다.


팻말을 흔들던 그 소년,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줄,

그리고… 나도 모르게 피어난 한 조각 웃음.


도넛 하나로 마음이 따뜻해지던 그 오후처럼,

작은 것도 기념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삶은 때로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퍼즐과 같다.

그 조각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당신의 삶 속에도 작고 따뜻한 기념일 하나쯤 숨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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