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를 떠올리다
“아내를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시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배우자가 해줄 수 있는 거예요.
물을 주고, 가꾸고, 햇빛도 보여줘야 하죠.
우리가 노력해서
가두면 안 돼요.”
오늘 아침, 우연히 켜둔 방송에서 한 출연자가 조용히 말했다.
순간, 내 마음 어딘가가 울렸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장면 하나.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서 정성껏 가꾸던
단 하나뿐인 장미꽃이었다.
“내 꽃은 내가 물을 주었고,
유리덮개를 씌워 주었고,
바람막이를 해 주었고,
벌레를 없애 주었고,
하소연을 들어 주었고,
자랑도 들어 주었고,
때론 아무 말 없이도 있어 주었어.
그래서 내게는 내 꽃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이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제21장
사랑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라고
나는 오래전에 이 책에서 배웠다.
존재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돌보는 시간을 통해 더 특별해지는 것.
우리는 종종 꽃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꽃이라 부를 때,
그건 단지 그 사람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을 위해 물을 주고,
햇빛을 찾아주고,
가시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외롭고 고단한 여정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이 떠나온 행성의 장미를 잊지 못했다.
그는 깨달았다.
사랑은,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꽃이고 싶다.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
내 삶의 조건을 가꾸어주는 사람과 함께 피어가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
그건 그저 역할이나 위치가 아니다.
여전히 피어나고 싶은,
자기만의 색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싶은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스 신화 속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데려가며
그녀가 시들지 않도록 ‘봄’을 남겨두었다.
억압과 자유 사이의 긴장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피어날 수 있는 계절을 허락하는 일이다.
꽃은 가두면 시든다.
유리병 속에 가두는 순간,
그 향은 숨 쉬지 못한다.
진짜 사랑은 그렇게 가두지 않는다.
햇빛을 보여주고, 바람을 맞게 하고,
자연스럽게 피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나를 시들지 않게 해주는 사람.
내 안의 봄을 기억해주는 사람.
나는 꽃이고 싶다.
누군가의 시선에 맞춰 꾸며진 조화가 아니라,
햇빛과 물 속에서 피어나는
살아 있는 꽃이고 싶다.
“우리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어요. 나는 히스클리프예요.”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비극적인 사랑조차 서로를 감싸는
한 줄기 햇빛과 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랑을 원한다.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피어날 수 있는 햇살 같은 사람.
그와 함께, 나도 피어날 수 있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걸 알아요.”
그 말 하나면,
나는 오늘도 더 깊이 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은 조화(造花)가 아닌, 생화를 닮은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아니라,
햇빛과 물을 스스로 느끼며 살아 숨 쉬는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