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함께 걷는 마을의 풍경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나 웅장한 몸짓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를 손에 든 한 사람의 조용한 발걸음에서,
잔잔하지만 깊은 변화가 피어납니다.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의 언어는,
그렇게 묵묵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우리 마음에 가닿습니다.
비가 촉촉이 스며드는 회색빛 거리,
혹은 눈송이가 흩날려 온 세상이 고요한 백색으로 물든 겨울날에도
두 그림자는 언제나 나란히 길을 나섭니다.
하나는 네 발로 왈가닥,
다른 하나는 두 발로 사뿐히.
보폭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의 시선은 언제나 같은 곳을 향합니다.
그 사이에서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가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고즈넉이 흔들립니다.
그것은 풍경과 걸음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됩니다.
미국에 정착한 뒤, 낯선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제 손에 들리게 된 그 비닐봉투.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이제는 말없이 존재를 품어주는 사랑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어귀에는 강아지 배변 수거함이 조용히 서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페인트는 벗겨지고
뚜껑은 약간 휘어졌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줍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 어귀에 묵묵히 서 있던 빨간 우체통처럼 말이죠.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조심스레 품고,
멀리멀리 전해주던 그 작은 상자처럼,
이 낡은 수거함 또한 우리 마을의 사랑과 책임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저는 마치 제가 쓰지 못한 짧은 편지를 조심스레 부치는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작은 생명에게 건네는 말 없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너의 삶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어요.”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배변을 부끄러워하지 않듯,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도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단순한 훈련의 결과가 아닙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따뜻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저 없이
두 손으로 작은 생명의 흔적을 감싸 안습니다.
비닐봉지 하나에 담긴 그 손길에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깊고도 고요한 애정이 배어 있습니다.
푸른 잔디밭에서 한껏 몸을 맡긴 채 신나게 뒹구는 강아지,
그 곁에 묵묵히 서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 사람.
원반을 던지고 받으며 순수한 웃음을 나누는 다정한 장면들.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 순간,
시간마저 멈춘 듯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작은 생명이 건네는 투명한 위로는
하루의 고단함을 천천히 녹여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굳이 필요 없습니다.
비닐봉지를 쥔 손,
위험한 길에서 먼저 비켜서는 배려 깊은 발걸음,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깊은 눈빛.
그 모든 몸짓 속에 사랑은 이미 조용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돌봄을 거대한 책임이나 무거운 결심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때때로 돌봄은
“네가 여기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
라는 아주 작은 인식 하나로 충분합니다.
수치심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작은 생명을 향해 기꺼이 몸을 낮추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까요.
요즘 저는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묵묵히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자주 바라봅니다.
어깨를 살짝 웅크린 채,
작은 존재에게 온 마음을 기울이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조용한 속삭임을 듣습니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
그 조용하고 깊은 사랑이
오늘도 이 작은 마을을,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을
조금씩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