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농구 골대 하나에서 시작된 마음
먼 선교지의 흙마당 위에 아이들을 위한 광장을 짓고 있습니다.
바닥을 다지는 이들과 함께,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기적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삶이 때때로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예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있다.
필리핀의 오래된 마을.
낡은 콘크리트 벽을 배경으로, 기울어진 나무 판자 위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린 농구 골대.
철사로 엮은 링은 이미 한쪽이 처져 있었고, 바닥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땀이 번들거리고, 맨발로 뛰는 발 아래로 먼지가 일었다.
아이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서서, 숨을 죽이고 공의 궤적을 따라 눈을 굴리고 있었다.
한쪽엔 빨래가 널렸고, 그 너머로는 바나나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순간, 묘하게 마음이 울렸다.
정비되지 않은 바닥, 삐뚤어진 링,
하지만 그 안엔 살아 있는 힘,
기적처럼 튀어 오르는 생의 의지가 있었다.
내가 다녀온 마을도 그와 비슷했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되감은 듯한 풍경이었다.
비포장 자갈길 위로 흙먼지가 날리고,
길 옆 풀숲은 너무 우거져 뱀이 기어나올 것만 같았다.
바나나숲 너머로는 낡은 판잣집들이 이어졌다.
줄줄이 널린 빨래와, 바람에 날리는 셔츠 소리.
공기엔 습기가 가득했고, 벌레가 우글거릴 듯한 정적이 느껴졌다.
깡마른 흰 소 한 마리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먼 유치원으로 걸어갔다.
버스는 지나가지 않는 동네.
검색창에선 ‘필리핀 농촌의 아름다움’만 떠오르지만,
이곳은 그 뒤편에 숨은 진짜 마을이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한국의 시골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 부모 세대가 기억하는 그 시절,
삽자루를 잡고, 고무신을 끌던 그 풍경.
그 마을 한복판에, 지금 우리는 농구장을 짓고 있다.
문화센터 앞, 22미터 × 33미터의 빈 공간.
먼지 나던 그 마당이 이제는 아이들의 광장이 되고,
주말엔 FARMER’S MARKET이 열리는 마을 장터가 될 예정이다.
아이들이 뛰고,
청년들이 흘린 땀이 구호가 아닌 자립의 첫 걸음이 되는 곳.
도서관과 예배당, 농장이 하나로 연결되는 공간.
지금까지 바닥 공사는 끝났다.
시멘트가 깔렸고, 한쪽에선 페인트칠이 시작됐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청년들이 삽을 들고 흙을 고르고,
아이들이 옆에서 웃으며 구경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기적은 종종, 바닥부터 시작된다는 걸.
농구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다.
이 마을에선 그것이 유일한 광장이며, 작은 사회다.
규칙이 있고, 질서가 있고, 웃음이 있고,
무너진 공터 위에 뛰는 발자국들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준다.
낡은 골대 아래에서,
비틀어진 링에 공이 닿는 순간,
기적이 튄다.
우리가 짓고 있는 농구장은
그 오래된 골대의 연장선이다.
그 투지를 잊지 않기 위해,
그 힘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깔아주는 단 한 번의 ‘안전한 바닥’이다.
그날, 아이들은 농구공을 처음 받아들고 웃을 것이다.
그 웃음엔,
기울어진 링 아래에서 소리 없이 살아오던
수많은 날들이 담길 것이다.
그리고 나도, 조용히 마음속에서 웃게 될지 모른다.
사실 나는 선교지에서 돌아온 날,
마음속에 조용히 다짐 하나를 품었다.
이 농구장이 완성되면 좋겠다고.
그래서 작게나마 어떤 수익이 생기면
선교비로 쓰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도하고 있다.
지금 나는 해외동포문학상을 준비 중이다.
이 상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재외한인을 대상으로
삶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공모하는 대회로,
1등 상금은 500만 원.
우연히도, 지금 이 농구장에 남은 공사 비용과 같은 액수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상금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작은 기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바닥을 다지는 사람들 곁에서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바닥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속삭이게 된다.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