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작별, 그리고 한 통의 소식
에필로그를 쓰고 펜을 놓았을 때, 나는 정말로 이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회복의 날들을 고백했고, 살아 있다는 기적을 충분히 나누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 됐어. 여기까지면 충분해.”
그런데, 그 고요를 깨듯 한 통의 소식이 도착했다.
내가 다녀온 선교지에서였다.
사진 몇 장과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유정란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어딘가 오래된 마음이 다시 톡, 하고 울렸다.
유정란.
그저 식탁 위의 달걀과는 다른 이름.
그 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 들어 있다.
온기와 시간이 주어지면
언젠가 껍질을 깨고,
병아리는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그 뜻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유정란은 그냥 계란이 아니다.
기다림 속에서 자라는 생명,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다.
마치—
내가 그랬듯이.
한때 나는 껍질 속에 갇혀 있었다.
병실의 창은 흐렸고,
의식은 희미했고,
몸은 한동안 나를 떠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사람의 기도,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손길이
조금씩 나를 깨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났다.
어쩌면 그 수술대 위에서가 아니라,
그 후의 날들 속에서
조용히 부화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아리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단 하나의 무기를 지니고 온다.
바로 eggtooth.
부리 끝에 돋아난 그 작고 뾰족한 돌기는
단단한 껍질을 스스로 깨뜨리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몸으로 바깥세상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
신기한 건, 껍질을 깨고 나오면
그 eggtooth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탈출을 위해 부여된, 생애 최초의 도구.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래도록 가슴이 뭉클했다.
어쩌면 나도 나만의 eggtooth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병실의 창 너머로 어렴풋이 빛이 스며들던 날들,
누군가의 기도와 말 한마디, 조용한 손길이
내 안에 숨어 있던 eggtooth를 일깨웠는지도 모른다.
그 후의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나만의 껍질을 깨고 있었다.
그건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었고,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값진 여정이었다.
선교지의 마을 사람들은
이제 유정란을 키우고,
판매하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 속 한 청년은
닭을 품에 안고 환히 웃고 있었다.
그 표정 안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조금의 무거움도 없이
순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당,
낡은 지붕 위에서 땀을 흘리는 청년들,
찬양 소리로 가득한 교회.
그 마을은 아직도 살아 있었고,
그곳에 뿌려진 사랑은
지금도 자라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유정란은 기적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생명을 품고 있는 존재.
그 껍질을 깬 순간부터가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이 들어선 그때부터
기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내가 받은 회복도,
그 마을의 유치원도,
지금 그들이 파는 유정란 한 판도—
모두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 기적이었다.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끝났다고 믿었던 이야기는
아직 껍질도 깨지 않은 채
가슴 어딘가에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완전하지 않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유정란처럼,
내 안에도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품는 기도,
다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생의 의지,
그리고 아주 작고 단단한 희망 하나.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속삭이게 된다.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내일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