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여섯 개가 남긴 말 없는 인사
☆ > 말보다 더 깊은 고마움이 남겨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눈빛, 어른들의 손길, 그리고 어느 날 탁자 위에 놓인 동전 여섯 개.
익숙한 단맛에 담긴 기억과 마음을 따라 오늘의 기록을 적어 내려간다.
아침이면 나는 앞마당 잔디밭으로 향한다. 잔디 가장자리,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자리에 로키가 조용히 앉아 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아니고 앞집 고양이다. 언제부턴가 내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다가가면 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내 주변을 한 바퀴 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괜찮다. 숨결과 눈빛, 그 짧은 고요가 우리에겐 충분하다.
인사를 나누고 나면 나는 15분쯤 떨어진 가게로 향한다. 유리문을 열고
조용히 불을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계산대 옆에 놓인 캔디 탁자를 채우는 것이다. 스니커즈, 킷캣, 마시멜로, 새콤한 젤리까지 가지런히 올려두고 나면, 탁자 위에는 작은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곳에 다가오고, 어른들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는다. 누구에게도 값을 묻지 않는다. 그냥 가져가라고 말한다. 초콜릿 하나가 그들의 하루를 조금 덜 지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2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이 작은 탁자를 채워온 이유도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서비스라기보다, 내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 같은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가게는 조금 더 활기를 띤다. 엄마 손을 잡고 들어선 아이들이 먼저 탁자 앞에 선다. 어떤 아이는 초콜릿을 하나 고르기까지 다섯 번은 망설인다. 껍질의 색을 비교하고, 모양을 살피고, 손끝으로 슬쩍 들어보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나는 참 좋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신중한 선택을 하는 듯한 모습. 그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릴 적 세탁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거기 초콜릿이 늘 있었어. 그냥 주셨어.”라고.
( 데메테르의 정원에서 )
나는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그러했듯, 사람들의 마음에 작고 따뜻한 씨앗 하나를 심고 싶었다. 그 씨앗은 바로 이 탁자 위 초콜릿과 젤리, 사탕들이었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고를 때마다, 나는 딸 페르세포네를 다시 만난 데메테르처럼 기쁨을 느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는 생명력이 되었고, 나는 그 웃음을 듣기 위해 더 다양한 단것들을 정성껏 사다 놓았다.
그런데 어제 오후, 청소를 하다 포장지 옆에서 작은 동전들이 놓인 모습을 발견했다. 쿼터 세 개, 다임, 니켈,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니 하나. 정말이지, 주머니를 탈탈 털어 마지막까지 꺼낸 것처럼 보였다. 2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누군가 조용히 초콜릿을 가져가며 마음을 놓고 간 것이다.
(말 대신 놓인 고마움, 계산되지 않은 진심)
마치 F.R. David의 노래 **「Words Don't Come Easy」**의 가사처럼,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작은 제물처럼 거기 놓여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동전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져가기 미안했어요.” 혹은 “이건 제 마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누군가의 속마음이 그 동전들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데메테르가 가뭄의 땅 위에 다시 풍요를 심는 순간처럼,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들었다.
(변치 않는 것들의 가치)
문득 올봄에 읽었던 **『Same As Ever』**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저자 모건 하우절은 워런 버핏과의 짧은 대화를 이렇게 전한다.
“And do you know what candy bar sells best today?”
Buffett smiled and answered quietly, “Snickers.”
“While circumstances constantly change, certain fundamentals never do.”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 중에도 늘 스니커즈만 고르는 사람이 있다. 다른 건 눈길도 주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초콜릿을 고른다. 그 손길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마음.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고 익숙한 위로라는 것을. 익숙한 단맛에 머무는 마음. 그건 반복이자 충성이고, 위로이자 고백이다.
그리고 어제의 동전들. 그것은 단지 감사의 표시가 아니었다. 페니 하나까지 포함된 그 조용한 배열은, 누군가의 마음 전체가 조용히 놓여 있는 풍경이었다. 누군가 하루의 귀퉁이에서,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어 한 것이다. 잊지 않고, 말하지 않고, 대신 놓고 간 작고 빛나는 진심.
이 작은 가게는 그렇게 아이들에게는 페르세포네를 만나는 기쁨의 장소가 되었고, 어른들에게는 삶의 작은 위안을 되찾는 데메테르의 정원이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순환하는 기적의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동전 여섯 개가 함께 만들어낸 이 풍경은 앞으로도 변치 않고 이어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다시 초콜릿을 사러 간다. 누군가의 기억 한 귀퉁이를 달콤하게 채워주기 위해, 기꺼이.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