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실을 다시 꿰매며, 나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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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수술 후, 모든 것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늘을 다시 집어 든 순간, 나는 알았다.
바느질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내 기적의 선언이었다.
나는 아직도 바느질을 하고 있다
뇌출혈 수술 후, 나는 잠시 바늘을 내려놓았다.
손끝의 감각은 낯설었고, 재봉틀 발판에 발을 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조용히 바늘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실을 꿰는 순간, 심장이 두 번 크게 뛰고는 이내 고요해졌다.
그때 알았다. 바느질은 단순히 옷을 꿰매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행위라는 것을.
병실 창밖의 햇빛은 오래된 천 위에 스며든 염료처럼 번지고 있었다.
나는 숨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가족과 의사들의 입에서 오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고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들어온 것이 바늘과 실이었다.
천 위에 실을 올리고 바늘을 꿰는 일은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작은 우주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다.
바늘이 너무 크면 실이 헐거워지고, 실이 너무 얇으면 천에 박히지 않는다.
바느질의 첫 번째 원칙은 실·바늘·천이 짝을 맞추는 것이다.
얇은 실크에는 9호나 11호의 가는 바늘을,
두꺼운 청바지에는 16호나 18호의 굵은 바늘을 써야 한다.
청바지를 수선할 때는 밑실은 굵게, 겉실은 한 단계 가늘게 써야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
수술 후 처음 맡은 일은 한 손님의 신사복 바지 단을 줄이는 일이었다.
얇고 부드러운 원단이라 겉에서 실땀이 보이지 않도록
가는 세발뜨기로 한 땀씩 정성스럽게 떠야 했다.
또 어느 날, 단골 손님이 쭉쭉 늘어나는 원단의 바지를 들고 왔다.
이런 천은 바늘땀이 잘 박히지 않고, 자칫하면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노루발 밑에 종이테이프를 붙여 박는다.
침판 구멍이 좁아져 바늘땀이 건너뛰지 않기 때문이다.
바느질은 기술이지만, 그 기술의 목적은 결국 ‘겉에서 드러나지 않는 정성’이다.
플라톤 『향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며, 육체가 아닌 영혼에 깃든다.”
나는 실밥을 따라 한 땀 한 땀 꿰매며,
닳아 해진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흘려보낸 시간과 마음을 꿰맨다.
그 기억은 옷의 주름 속에, 바느질 선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흘러도 정성껏 꿰맨 옷을 입고 웃던 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한 손님은 청바지를 들고 와 “원래 밑단 그대로 줄여 달라”고 했다.
이른바 ‘오리지널 햄’ 작업이었다.
두꺼운 이음매는 재봉틀이 잘 넘어가지 않으니
망치로 두드려 두께를 줄인 뒤 천천히 박아야 했다.
성급하면 바늘이 부러지고 실이 끊어진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바지를 건네주자,
손님의 환한 미소가 내 하루를 붙들어 주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요청도 있었다.
결혼식 전날, 한 손님이 바지 기장이 너무 길다며 달려왔다.
시간은 없고, 박음질로 마무리할 여유도 없었다.
그럴 땐 임시방편으로 햄 테이프를 사용한다.
천 안쪽에 테이프를 대고, 얇은 천이나 손수건을 덮은 뒤
다리미로 눌러주면 자국 없이 깔끔하게 고정된다.
영구적인 수선은 아니지만, 그날 하루를 지켜주는 작은 기술이 된다.
돌아보면 바느질은 언제나 나를 붙잡아 준 ‘삶의 실’이었다.
수술 후의 두려움, 이민 초기의 불안, 손님들의 기쁨과 슬픔이
한 땀 한 땀 실에 스며들어 나를 다시 일으켰다.
천이 찢어지면 덧대고, 실이 끊어지면 다시 꿴다.
그 단순한 반복이 내 마음과 영혼을 꿰매 주었다.
오늘도 나는 바늘을 든다.
누군가의 옷을, 그리고 나 자신의 하루를 꿰매기 위해.
실 끝이 바늘귀를 통과할 때, 나는 안다.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꿰맴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것이 내 손끝에서 일어나는,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