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꿰매는 조용한 흔적들
아침 햇살이 마당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밤새 머금었던 이슬방울들이 잔디 끝에서 반짝이다가, 바람이 스치자 하나둘 떨어졌다.
나는 평상 위에 바느질 상자를 내려놓고, 작은 방석 위에 앉았다.
그 순간, 잔디 위를 가볍게 스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앞집 고양이 로키였다. 느릿하게 다가온 그는 내 앞에 와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호박빛 눈동자가 아침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마치 내가 실과 바늘을 꺼낼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바느질은 반복의 예술이다.
엉킨 실을 풀고, 천과 천 사이의 틈을 메우며, 울퉁불퉁한 이음선이 매끄럽게 이어질 때
나는 내 삶의 자국들을 함께 더듬는다.
찢어진 자리마다 덧댔던 날들, 해어진 틈마다 꿰맸던 순간들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데려온 발자국이었다.
재봉틀 바늘이 위아래로 오가며 내는 잔잔한 리듬은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소리였다.
바늘 끝에서 번지는 빛, 실이 미묘하게 떨리는 모습, 그리고 손목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나는 지난 계절들을 불러냈다.
병실 창가에 앉아 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얀 빛이 물결처럼 번져오던 그날, 손끝은 낯설었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정말 살아난 걸까.’
그 물음에 답해준 건 의사도, 약도 아니었다.
바늘 한 자루와 실 한 가닥이었다.
실을 꿰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직 이어야 할 하루가 남아 있다는 것을.
그 사소한 깨달음이 그날의 나를 버티게 했다.
그 후로 나는 바늘로 많은 것을 꿰맸다.
손님의 옷, 가족의 옷, 그리고 내 하루하루를.
프롬 드레스의 주름에는 새 출발의 설렘을,
장례식 정장에는 말하지 못한 이별의 눈물을,
군복의 견장에는 조용한 응원을 담았다.
바느질은 내 삶의 상처와 기억을 함께 이어주었다.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여름밤 마루에 앉아 옷감을 재단하시던 장면.
날 선 가위가 천 위를 지나갈 때 들리던 ‘삭삭삭’ 소리는
불안하던 내 마음을 잠재우는 자장가 같았다.
한 번은 내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하얀 면 블라우스를 만들어 주셨다.
조개 단추가 달린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예쁘다”라며 부러워하던 기억.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옷은 단순한 천이 아니라 마음을 입히는 것임을.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바느질로 이끌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가끔 오래전 들었던 한 구절을 떠올린다.
『Footprints in the Sand』 — 모래사장을 걸을 때 언제나 두 줄이던 발자국.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발자국은 한 줄뿐이었다.
“왜 나를 혼자 두셨나요?”라는 물음에 들려온 대답.
“그때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단다.”
돌아보면, 나를 업어준 것은 신의 손길만이 아니었다.
바느질을 처음 가르쳐준 어머니의 손,
이민 초기 낯선 땅에서 나를 믿어준 가족의 시선,
옷을 맡기며 내게 마음을 내어준 손님들의 온기.
그 모든 것이 나를 들고, 업고, 여기까지 데려왔다.
삶은 종종 흙처럼 부서진다.
때로는 불에 그을린 듯 잿빛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과 바늘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이어붙일 수 있다.
상처 위에 한 땀 한 땀, 그 틈이 보이지 않게 꿰매어 갈 수 있다.
로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 곁을 떠난다.
그 작은 발자국이 잔디 위에 찍혔다.
나는 잠시 그 발자국을 바라보다, 다시 손에 쥔 바늘을 들어 천 위에 올렸다.
바늘 끝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실을 끌어당긴다.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제의 발자국 옆에 오늘의 발자국을 남기며,
언젠가 누군가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이 길이 위로가 된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발자국 사이사이에 남은 바느질 자국이,
언젠가 나를 살렸던 그 작은 기적을
다른 누군가의 하루에도 전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