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바늘끝에 담긴 습관

살짝의 힘으로 이어지는 삶

by 운조


아침 햇살이 가게 유리문을 비스듬히 스치고 들어왔다. 투명한 유리 위로 빛이 흘러내리며, 안쪽에서 반짝이는 작은 금속을 비췄다. 순간, 바늘끝이 별빛처럼 번쩍였다. 그 빛은 단순한 쇳조각의 반사광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내 손끝에 밴 습관, 그 습관이 만들어낸 고요한 빛이었다.


실을 바늘귀에 끼울 때 나는 무심히 숨을 죽인다. 마치 작은 의식처럼, 매듭을 묶기 전 손가락으로 실을 살짝 쓸어내린다. 손님이 건네는 옷을 받을 때는 늘 양손으로 받친다. 이 작은 몸짓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나의 하루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세탁소라는 공간은 단순한 노동의 자리가 아니라, 습관이 삶을 다져주는 자리였다.


.....스르륵, 닫히는 순간의 위로


그날 오후, 낡은 점퍼 하나가 가게로 들어왔다. 주인은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퍼가 절반에서 멈춰요. 아무리 힘을 줘도 안 올라가네요.”


나는 점퍼를 받아들고 돋보기를 들여다보았다. 눈에 익은 고장, 손끝이 먼저 알아보았다. 슬라이더가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이건 교체가 아니라 조율이네.’ 경험이 속삭였다.


펜치를 집어 들고 양옆을 살짝, 그렇다, 언제나 중요한 건 ‘살짝’이다. 너무 세게 조이면 금세 부러지고, 느슨하면 다시 헛돌 뿐이다. 슬라이더가 맞물리도록 조율한 뒤, 얇게 깎은 양초를 지퍼 이빨에 문질렀다. 손가락이 위아래로 움직이자 소리가 변했다. ‘사각’에서 ‘스르륵’으로.


닫히지 않던 길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단순히 지퍼 하나가 고쳐진 게 아니었다. 멈춘 것이 다시 이어지는 기적 같은 경험. 그것은 내 마음까지 풀어주었다. 고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나는 또 한 번 삶의 비밀을 배웠다.


.....관계라는 지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지퍼와 닮았다. 믿음이라는 슬라이더가 조금 벌어졌을 뿐, 본체의 이빨은 멀쩡할 때가 많다. 조금의 조율, 조금의 기다림, 조금의 양보만 있으면 된다. 살짝만 조율하면, 스르륵. 말을 줄이고 성급함을 덜어내면, 스르륵.


하지만 억지로 힘을 주면 오히려 움직임은 뻣뻣해진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의심이나 집착은 오히려 틈을 더 벌린다. 살짝의 감각, 그 절묘한 힘의 조절이 관계를 이어주는 열쇠다.


나는 수선 일을 하면서 인간관계의 비밀을 손끝에서 배웠다. 옷감을 살리듯, 관계도 고칠 수 있다. 다만 그 방법은 늘 ‘살짝’이라는 감각 속에 숨어 있다.


......습관이라는 나의 나침반


수선대에 앉아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내 손은 수많은 작은 습관을 되풀이한다. 실을 바늘귀에 통과시키기 전, 실 끝을 입김으로 적시는 습관. 재단가위를 책상에 내려놓을 때 날이 부딪히지 않도록 살짝 벌려 놓는 습관. 심지어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먼저 미소를 보내는 습관까지.


처음엔 이런 것들이 단순히 기술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알겠다. 기술은 반복으로 얻을 수 있지만, 습관은 삶이 빚어낸다. 바늘끝에서 시작된 습관은 나의 하루를 지탱하고, 무너진 삶의 틈새를 메워왔다. 잘 꿰어진 실이 천을 단단히 묶듯, 습관이 나를 붙들어주었다.


때때로 내 손이 기억을 먼저 움직인다. 오래전 배운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며, 머리가 계산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것은 단순한 숙련이 아니라 손끝에 각인된 인생의 패턴이다. 그 패턴 덕분에 나는 무너진 하루를 다시 세울 수 있었고, 길을 잃은 날에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반짝이는 바늘끝, 이어지는 삶


오늘도 바늘끝은 반짝인다. 실을 꿰고, 매듭을 묶고, 올을 고르고, 지퍼를 고친다. 반복되는 하루지만, 그 안에는 늘 ‘살짝’이라는 나만의 나침반이 숨어 있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무너진 것을 다시 잇는 길, 닫히지 않던 것을 이어주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쳐 흔들릴 때마다 나 자신을 다시 세워주는 길.


삶은 커다란 결단보다, 손끝에 배어든 작은 습관으로 이어진다. 나의 하루는 바늘끝에서 출발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오늘도 그 바늘끝은 말없이 빛나며, 무너진 세계를 조금씩 꿰매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