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 기적도 멈추지 않게
문득 기계가 낯선 소리를 냈다.
낮고 부드럽게 흐르던 모터음이 언제부턴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갈갈거리는 금속성 울림이 바닥을 타고 올라와 발끝을 간질였다. 공회전하는 바퀴가 미세하게 떨리고, 노루발 아래 천이 가볍게 밀려나가다 말고 툭툭 끊겼다.
“이상하네…”
발판에서 발을 떼고 재봉틀을 멈춘다. 기계는 멈추었는데도 귀 속에는 여전히 그 소리가 남아 흔들렸다. 기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어쩌면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과 닮아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이 재봉틀의 숨소리까지 알아듣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업등을 낮추고 본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바늘대 주변엔 보풀이 얇은 구름처럼 끼어 있었고, 바퀴 근처엔 보이지 않던 먼지가 층을 이뤘다. 손톱으로 살짝 긁어 떼어내고, 붓으로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내가 너무 몰아붙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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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는 나와 10년 넘게 동고동락했다.
이민 초창기, 하루하루 버티듯 살던 시절. 시어머니가 “바느질만 잘해도 굶지 않는다”고 말씀했을 때, 떨리는 손으로 이 기계를 들여왔다. 처음에는 바늘이 너무 빨라 무서웠다. 천이 이끄는 대로 손이 따라가지 못해 바늘에 손가락을 찌르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기계가 빠르면, 내가 천천히 하면 되잖아.”
그때부터였다. 기계는 내가 되어갔고, 나는 기계가 되어갔다. 발판에 얹은 발목의 각도, 손목이 천을 밀어 올리는 힘, 노루발을 드는 타이밍—사람의 손끝으로 미세하게 조율되는 세계. 이 철제 몸체는 어느 날은 부드럽게, 어느 날은 까칠하게 반응했다. 정말로 감정이 있는 것처럼.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일을 떨어뜨린다.
작은 병에 담긴 투명한 기름을 축 사이에 톡, 또 톡. 오일이 스며드는 동안 잠시 기다리면, 기계는 알아챈 듯 다시 부드럽게 돌아간다. “고마워”라고 말하듯 소리가 낮고 길게 고른 호흡을 찾는다. 기계도 사랑받는 걸 아는 걸까. 그 따뜻함을 기억하듯, 금속의 마찰이 줄고, 실은 매끈하게 제 길을 찾는다.
그럴 때면 마음이 묘하게 움직인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손길 하나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기계를 돌보며,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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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쓰러지기 전, 내 몸도 분명 신호를 보냈다.
어지러움, 금세 지치는 호흡, 자잘한 두통들. “잠시 멈추라”고, “쉬어야 한다”고, 내 안에서 누군가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바빴고, 귀찮았고, 설마 싶었다. 그래서 결국 무너졌다.
쓰러진 뒤에야 알았다.
몸도, 기계도 고장 나기 전에는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문제는 그 신호가 아니라, 그 신호를 듣지 않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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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기계가 완전히 멈췄다.
바늘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발판을 밟아도 반응이 없었다. 손끝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제 끝인가…” 두려움이 목 뒤를 타고 올라왔다. 드라이버로 뒷면을 열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모터 안쪽, 벨트가 늘어진 고무줄처럼 헐겁게 감겨 있었다. 기계가 말하고 있었다. “나 좀 봐줘.”
메커닉을 불렀다.
그는 말이 적었다. 오랫동안 기계를 만져온 손, 손등에 묻은 검은 기름. 그는 천천히 분해하고, 오래된 벨트를 새것으로 갈고, 회전축에 오일을 바르고, 다시 조립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판을 밟아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도 쉴 때가 있어야죠. 너무 오래 일했어요.
이제 좀 천천히, 같이 쉬어요.”
그 말에 울컥했다.
기계도 쉴 때가 있어야 한다는 그 말. 그것은 곧 내게 던지는 말이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쉬게 했던가. 혹시, 기계보다 더 혹사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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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봉틀 옆에 작은 쪽메모를 붙였다.
① 하루 한 번, 오일 2방울
② 작업 끝나면 먼지 브러싱
③ 일주일에 한 번, 벨트 텐션 확인
누군가에겐 당연한 절차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연함’을 문서로 붙여두지 않으면, 매일의 급함이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 몸도, 마음도, 기계도 마찬가지다. 지키는 습관이 곧 수리의 절반이라는 걸, 뒤늦게 배웠다.
혼자 있을 때면 기계에게 말을 건다.
“오늘은 어때?”
발판을 아주 천천히 밟아 본다. 소리가 고르게 내려앉으면, 나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린다. 서두를수록 삐끗한다는 걸, 나는 바늘과 피로 배웠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일을 빠르게 끝내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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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아보하’( '아보하(Aboha)는 ‘A Very Ordinary Day’,) 를 말한다—아주 보통인 하루.
크게 기쁘지도, 크게 힘들지도 않은 날. 예전 같았으면 재미없다고 넘겼을 평범함. 나는 이제 그 평범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기계가 고장 나지 않고, 나도 아프지 않은 날. 실이 한 방향으로만 쭉 빠지지 않고, 토닥토닥—재봉틀이 원단을 밀어주는 그 균일한 리듬. 그게 바로 나의 ‘아보하’이고, 그 평범함이 이루는 회복이다.
가끔 손님이 묻는다.
“왜 이렇게 천천히 하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빨리 하려면, 먼저 천천히 해야 해요.”
말끝에 재봉 소리가 박자처럼 붙는다. 기계의 리듬과 심장의 리듬이 한 줄로 맞물리는 순간, 손끝은 다시 자신감을 찾는다. 속도를 낮추는 용기—내 두 번째 삶이 가르쳐준 가장 실용적인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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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발판을 밟는다.
기계는 부드럽게 돌아간다. 바늘 끝이 천을 조심스레 꿰매며 작은 선을 남긴다. 그 선들이 겹치고 이어져 하나의 옷이 된다. 그 옷을 입은 누군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면접장일 수도, 병문안 길일 수도, 오래 미뤄뒀던 약속의 자리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도, 그날을 기적처럼 기억할지 모른다—지퍼가 막힘없이 올라가고, 밑단이 발목에서 단정히 멈춰 주던 바로 그 감각을.
해 질 무렵, 스위치를 내리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발판을 밟아 본다. 소리는 낮고 길게 안정되어 있다. 작은 브러시로 먼지를 털어내고, 오일 한 방울을 더 떨어뜨린다. 불을 끄면 금속의 열기가 서서히 식는다. 그 온기가 내 손바닥에도 오래 남는다.
문을 나서며 중얼거린다.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고장 나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오늘 하루가.
어제와 같은 속도로, 그러나 오늘 더 깊은 마음으로 발판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모든 아주 보통인 하루가 결국 나를 살리고 있다는 이 감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