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풀린 단추 하나가 말해주는 것들

매듭과 단추, 그리고 다시 꿰매는 삶의 기술

by 운조



셔츠를 세탁기에 넣기 전, 나는 반드시 단추를 하나하나 다 풀어놓는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바느질을 오래 해본 사람은 안다. 단추를 모두 푼 상태에서 프레스를 해야 옷이 비로소 ‘제대로’ 다려진다는 것을. 단추를 채운 채 다리면 원단이 당기고, 옷맵시가 흐트러진다.

단정함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느질도 마찬가지다. 얇은 바늘 끝이 옷을 관통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특히 손바느질을 할 때는 더더욱.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까 조심하고, 혹시나 피가 배지 않게 하얀 천을 덧대 쥔다. 옷에 남은 피 한 방울은 ‘피스팟’이 되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심성과 섬세함이 옷의 품격을 결정한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같다.


...풀린 매듭과 인생의 경고


어느 날, 손님이 맡긴 바지 네 벌의 기장을 줄였다. 나는 줄자를 가져와 겉기장만 재고 바로 재단을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기장’이란 겉으로 보이는 길이가 아니라, 안쪽 솔기부터 발목까지 재는 ‘인심’이 맞는 기준이라는 걸. 결국 네 벌 모두 기장이 들쭉날쭉해졌다. 손님은 조용히 말했다.

“다 다시 해주시겠어요?”

물론 다시 해야 했다. 그것은 내 책임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줄자를 댈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간혹 손님이 “바지 기장이 왜 이렇게 풀렸을까요?” 하고 묻는다. 햄이 풀린 것이다. 대부분은 공장에서 기계로 박은 밑단인데, 마지막 매듭을 제대로 묶지 않거나 실이 헐거워져서 딱 한 곳만 끊겨도 ‘주르륵’ 풀려버린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매듭 하나가 느슨하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셔츠 단추 하나가 가르쳐준 것


내 손님 중엔 셔츠 단추를 ‘새로 달아달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단추는 여전히 셔츠에 붙어 있었지만, 실은 거의 다 풀려 있어 조금만 당기면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 단추를 다시 달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음을.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의 매듭이 풀리면 관계도, 마음도 금세 흩어진다.


나는 예전에 가까웠던 지인과의 사이를 떠올렸다. 사소한 오해를 제때 풀지 못해 결국 연락이 끊어졌던 기억. 그때는 별일 아니라 여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단추 하나가 흔들릴 때 단단히 꿰매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단추 하나라도 확실히 다시 꿰매야 한다. 잡아야 할 매듭은 단단히 묶고, 풀어야 할 매듭은 망설임 없이 풀어야 한다.


...묶어야 할 매듭, 풀어야 할 매듭


내 바느질에서는 언제나 실을 ‘두 겹’으로 쓴다. 특히 바지 허리나 소매 끝처럼 손이 자주 닿는 곳은 한 겹으로는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겹의 실이 단단히 엮이면, 웬만한 힘에도 버틴다.


삶도 그렇다. 혼자보다 둘이, 의심보다 신뢰가 겹겹이 쌓일 때 오래 견딘다.


하지만 모든 매듭을 단단히 묶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풀어야 할 매듭도 있다. 꽉 조여서 숨통을 막는 매듭, 불필요하게 얽힌 오해와 미움의 매듭은 풀어야만 새 실을 꿰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매듭이 있다는 건 단절의 징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지점을 고치면 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풀린 단추 하나가 주는 기적


풀린 단추 하나, 엉킨 실 한 가닥, 그리고 바지 기장 하나에서 삶은 늘 말 걸어온다.

“한 번 더 살펴보자. 아직 늦지 않았어.”


작은 신호를 무심히 넘기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일을 지키는 방법이고 내 삶을 지탱하는 습관이다.


오늘도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나는 마음속 단추들도 조용히 풀어본다. 닫아둔 감정, 미뤄둔 사과, 정리되지 못한 기억까지. 그리고 새로운 실을 꿰어 매듭을 단단히 지으며 되뇌인다.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풀리고, 잊히고, 망가졌던 것들을 다시 꿰맬 수 있는 시간이 오늘 내 손끝에 있다는 것이.


그 습관은 바늘끝에까지 스며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늘을 잡지만, 매번 같은 방식과 순서로 시작한다. 매듭을 묶는 힘, 풀어내는 용기, 그리고 다시 꿰매는 인내가 내 손끝에서 자라나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다.


그 이야기는, 바늘 끝에서 피어나는 또 하나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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