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의 힘, 내 삶을 꿰맨 이야기
> 바늘 끝에서 시작된 작은 습관이 내 삶 전체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실을 꿰고 천을 자르는 매 순간, 나는 스스로를 다시 꿰매고 있었습니다.
바느질이 나를 살렸다.
성공적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지 못한 그날, 나는 또 하나의 인생 출구를 놓쳤다.
“다음에서 나가야 해요.”
내 말에 남편이 되물었다.
“지금이 다음이야? 그 다음이야?”
순간의 머뭇거림과 엇갈린 말이, 차 안 공기를 묘하게 무겁게 했다.
출구 표지판은 저만치 뒤로 물러났고, 남편의 짜증 섞인 한마디가 귓가에 오래 남았다.
“앞으로 운전할 땐 내버려 둬. 더 헷갈리기만 해.”
그 순간, 오래된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만약 그때 바늘을 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쯤 서 있었을까.
침묵은 많은 것을 품는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내 선택을 다시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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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었던 시절, 그 직업은 내게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는 “교육대학 장학생으로 갈 수 있다”며 대학 진학을 권유하셨다.
하지만 집안 사정을 뻔히 아는 나는, 그 말이 내게는 더 무겁게 다가왔다.
밤늦게 책상 앞에 앉아,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저를 설득하지 말아 주세요.”
그 편지를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는 순간, 마치 내 앞의 문 하나를 스스로 닫는 기분이었다.
대학 대신 나는 국가직 시험에 매달렸다.
밤을 새우며 교재를 붙잡았고, 결국 정규직 자리를 얻었다.
규칙적인 삶, 일정한 수입, 그리고 ‘사회에 속해 있다’는 자각이 나를 견고하게 붙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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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복직한 나에게 시어머니는 담담히 말했다.
“이제 그만두게. 여자가 바깥일 하는 게 남 보기에도 안 좋아.”
그 말 한마디가 예고 없이 내 삶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결국 사직서를 냈고, 한동안은 나 자신을 잃은 듯 방황했다.
그 무렵, 시어머니가 미국에 사는 동생의 초청으로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또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섰다.
그때 시어머니가 건넨 한 마디.
“바느질을 배워두면, 미국 가서도 굶지 않는다.”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문이 닫혔을 때 열어줄 또 다른 문을 알려주는 암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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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학원에 등록한 첫날, 나는 재봉틀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실을 꿰는 일조차 버거웠다.
바늘귀는 너무 작았고, 가위날은 번쩍이며 천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자릅니다.” 마음속으로 중얼이며 가위를 댄 순간,
심장이 두 번 크게 뛰고는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때 알았다.
천 위에서 내린 결단 하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기계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타다 불빛에 놀라 자전거를 내팽개친 적도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은 여러 번 떨어졌고, 그 기억은 여전히 나를 움츠리게 했다.
재봉틀 앞에 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서움을 뚫고 바늘을 들었다.
내 두려움과 낮은 자존감을, 한 땀 한 땀 꿰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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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선한 옷을 다시 들고 온 손님이 말했다.
“왜 이렇게 짧게 했느냐.”
그 투정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옷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바느질은 단순히 천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과 기억을 수선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바느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단이다.
한 번 자르면 돌이킬 수 없다.
학교 수필 과제에서 처음 방향을 잘못 잡아
아무리 공을 들여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던 기억이 겹쳤다.
그때 깨달았다.
처음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잘못 잘린 천은 아무리 꿰매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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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가사 실습에서 재봉틀 과제는 늘 엄마의 손에서 완성됐다.
그 엄마가 물려준 손끝의 기억이,
미국 땅에서의 내 삶을 견디게 했다.
바느질은 그렇게 내 삶의 틈을 메우고 있었다.
갈라지고 찢어진 마음의 천을, 다시 이어가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내 삶을 다시 붙이고, 이어주고, 살려내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그건, 작지만 분명한 기적이었다.
한 땀 한 땀이 모여 옷의 틈을 메듯,
내 삶의 틈도 그렇게 이어졌다.
그날부터 바늘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한 줄기 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생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늘 그랬다. 작은 바늘 끝에서 시작된 습관이, 결국 내 하루 전체를 다잡아 주었다. 실 한 올을 꿰어 매만지는 동안, 마음속 뒤엉킨 매듭이 풀려나듯 고요해졌다.
문득 생각한다. 삶이란 어쩌면, 그저 바느질처럼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동작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반복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 기적이 된다면—내 하루는 이미 기적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